성남북초 언덕 초입 위치한 문방구

아폴로·차카니 등 맛있는 불량식품들

벽면 가득한 문구·완구에 반가운 마음

 

30대 중반에 퇴사하고 문 연 문방구

정문에만 5곳, 셔터 못 내리고 경쟁도

새학기 준비물 문방구서 구하던 시절

“그때 친구들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죠”

국민학교를 다녔건, 초등학교를 다녔건 변하지 않는 추억 중에는 ‘문방구’가 있습니다. 다음날 새벽이면 배송이 오는 로켓도 없던 시절, 무인으로 24시간 운영되는 프랜차이즈 문구점도 없던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준비물부터 불량식품, 엠알케이 잡지까지 없는 게 없는 아이들의 만물상점이었죠. 수원 무등탕과 인천 양지탕이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의 사랑방이었다면, 아이들에겐 학교 앞 문방구가 그랬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옛날에는 토요일 오전까지 수업이 있었습니다)까지 학교 정문만 벗어나면 코 앞을 지키고 있는 문방구는 으레 출석도장을 찍어야 하는, 초등학생의 ‘국룰’이었죠.

특히 문방구 앞에 쭉 늘어선 게임기, 그때는 몰랐지만 우린 모두 ‘귀여운 도박’에 빠져 있었습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짱깸뽀’ 소리와 함께 가위 바위 보 중 하나를 택해 이기면, ‘야삐’ 소리와 함께 많게는 20개의 메달이 우르르 쏟아졌습니다. 10번 중 9번은 돈을 날렸지만, 한 번이라도 메달이 쏟아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죠. 메달이 나오면 친구들과 문방구 안에 들어가 불량식품으로 바꿔 먹곤 했습니다. 어머니들이 목욕탕 평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던 순간, 우리는 문방구 앞으로 모였습니다.

이번 레트로K는 그 시절 우리의 방과후를 채워주던 학교 앞 문방구를 찾아갑니다.

꿈돌이문구완구는 성남시 수정구의 한 언덕길 위, 성남북초등학교 앞에 위치해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꿈돌이문구완구는 성남시 수정구의 한 언덕길 위, 성남북초등학교 앞에 위치해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안녕하세요, 저는 성남북초등학교 앞에서 꿈돌이문구완구를 운영 중인 ‘꿈돌이 사장님’입니다. 제가 문방구를 운영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힘들었던 직장생활을 접고 30대 중반에 성남 중원초등학교 앞에서 처음 문방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매일 좁은 문방구 안에 학생들이 가득 찼어요. 바글바글했죠. 저를 포함해 정문에만 문방구 5개가 있어서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 늦게 문을 닫곤 했습니다. 서로 언제 문을 닫나 눈치를 보면서 말이에요.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죠. 요새는 ‘아직도 학교 앞에 문방구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슬프지만, 시대 흐름을 어떻게 거역하겠어요. 그때 우리 문방구를 찾았던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네요. 우리 문방구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꿈돌이문구점은 성남시 수정구 한 언덕길 위, 성남북초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 헤맸던 바로 초등학교 정문 코 앞의 ‘학교 앞 문방구’죠. 어린 시절엔 그토록 흔했는데, 지금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습니다. 꿈돌이문구점 주변도 온통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여느 신도시와 다를바 없습니다. 다만, 꿈돌이문구점이 있는 골목만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꿈돌이문구점은 학교 올라가는 언덕 초입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 1층에 있습니다. 비와 눈을 피해 아이들을 유혹하는 각종 장난감과 간식을 놓을 수 있는 차양막도 원래 색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바랬고 빨갛게 칠해졌던 간판도 군데군데 벗겨져 그 세월을 짐작케합니다.

문방구 앞에는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테라스, 그위에 캡슐 뽑기 기계가 놓여 있습니다. 짱깸뽀(?)와 양대산맥을 이루며 우리들의 주머니를 털어갔던 게임기였죠. 원하는 장난감이 나올 때까지 레버를 돌려야 했거든요. 문방구 유리문에는 장난감을 홍보하는 각종 포스터로 채워졌고 문방구 입구에는 그 시절 우리의 간식이었던 불량식품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아폴로부터 감자알칩, 차카니, 네모스낵 등 종류도 다양해 고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문방구 안쪽엔 발 디딜 틈 없이 문구·완구가 가득합니다.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꿈돌이 문구점을 마주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괜한 설렘과 함께 그 시절로 훅 날아가버립니다.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꿈돌이문구완구 내부 모습. 문방구 안에는 각종 문구와 완구류로 가득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꿈돌이문구완구 내부 모습. 문방구 안에는 각종 문구와 완구류로 가득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중원초 앞에서 첫 문방구를 열었던 꿈돌이 사장님은 20여년 전 이곳을 인수했습니다. 꿈돌이문구완구가 언제 처음 문을 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성남북초 앞을 지키는 문방구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첫 문방구를 열 당시, 치열한 경쟁을 몸소 겪은 꿈돌이 사장님은 그 유일함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문방구가 되게 많았어요. 정문 앞에 5개, 후문 앞에 5개였는데 그때는 학생 수도 많았고 반도 오전반, 오후반 이랬거든요.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편하게 일하려고 문방구를 열어는데 너무 힘들었죠. 아침 7시면 문을 열고 밤 11시 넘어서 문을 닫았어요 다른 문방구들이 일찍 열고 늦게 닫으니까 어쩔 수 없었죠.”

꿈돌이문구완구 안에는 아폴로와 차카니 등 옛날 아이들 추억의 간식을 팔고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꿈돌이문구완구 안에는 아폴로와 차카니 등 옛날 아이들 추억의 간식을 팔고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몸은 힘들었지만, 매일 문방구를 가득 채운 아이들을 보면 마음은 든든했습니다. 특히 새학기에는 유독 바빴습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책마다 공책을 하나씩 준비해야 했고 알림장과 일기장, 사인펜, 색연필, 실로폰, 멜로디언, 리코더, 체육복 등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들을 모두 문방구에서 구해야 했거든요. 학교 앞 문방구가 발 디딜 틈 없이 학용품으로 가득 차 있던 이유죠. 꿈돌이 사장님도 그때는 공책을 박스채 쌓아놓고 한 사람당 10권, 20권씩 팔았다고 기억했습니다. 지금은 1년에 반 박스도 안 나가지만요. 불량식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한 번 휩쓸고 가면, 바로 도매시장으로 가서 물건을 채워야만 학교가 끝나고 온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매시장을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해요. 학생 수 자체도 줄었고 이제 학교 준비물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문방구에서 팔던 것들이 무인점에서 더 저렴하게 파니까 우리는 당일에 준비 못한, 급한 애들만 와서 사는거죠. 포스터칼라나 사인펜 이런 건 다 굳어서 버린 지 오래네요”

꿈돌이문구완구 앞에 있는 캡슐 뽑기 기계.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꿈돌이문구완구 앞에 있는 캡슐 뽑기 기계.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성남북초 주변도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한때는 전교생이 100명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신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학생 수를 회복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20여년 전만큼 문방구를 찾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학생 수 자체가 줄었고, 학교 준비물은 없어졌고, 인건비를 절약한 무인 문구점과 다이소 등 저가형 매장에서 저렴하게 학용품을 팔기에 학교 앞 문방구는 설 곳을 잃게 됐죠. 자연스레 문방구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아직도 학교 앞에 문방구가 있느냐고 사람들이 물어요. 하지만 꿈돌이문구완구는 저한테 삶의 터전이었어요. 지금은 비록 그 구실을 못하지만요. 동네 문방구가 이렇게 없어지는 건 시대 흐름이니까 거역할 수 없겠죠.”

이제는 추억 속의 공간으로 굳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억합니다. 문방구 입구에 들어서며 났던 새 종이 냄새, 달콤한 달고나 향기, 게임기 앞에 모여 웃고 떠들던 아이들 웃음소리를 말입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