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 명창 6년 만에 심청가 완창
5시간 동안 울린 강산제의 숨결
천의 소리로 풀어낸 심청의 여정
“얼쑤 좋다!” 귀명창 함께 완성
제24회 임방울 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인천의 대표 소리꾼 김경아 명창이 지난 29일 학산소극장에서 ‘강산제 심청가’ 완창(完唱)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장장 5시간에 걸친 김경아의 심청가 완창을 보러 100석 규모 소극장 객석이 가득 찼습니다. 김경아 명창은 지난 2019년 10월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심청가 완창 공연을 펼친 바 있습니다. 김 명창의 이번 심청가 완창 무대는 6년 만입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국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 완창을 관람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얼쑤! 좋다!” 추임새도 넣다가 5시간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다 아는 심청 이야기를 어떻게 긴 시간 동안 소리로 뽑아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인당수에서 용궁으로 향하는 깊이와 속도로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심청이 기가 막혀 사배하고 업드려지더니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은 요만끔도 생각마옵시고 사는 대로 사시다가 어서어서 눈을 떠서 대명천지 다시 보고 좋은데 장가들어 칠십 생남허옵소서!”
김경아 명창은 고수의 장단에 맞춰 대목마다 심봉사가 되어 애끓는 소리로 죽은 곽씨부인을 부르짖다가, 심청을 안고 젖동냥을 다니며 진한 부정(父情)을 보여주기도 하고, 심청이 되어 인당수에 빠지기 전 홀로 남은 아비를 눈물로 걱정하다가, 뺑덕이네가 되어 심봉사의 등쳐 먹고, 공연 말미에선 전국 봉사들의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속사포처럼 쏘아냈습니다. ‘천의 얼굴’ ‘천의 소리’가 따로 없었습니다. 바닥까지 깔렸던 소리가 공연장 천장을 뚫을 정도로 치솟기도 합니다.
홍석복 고수와 조정래 고수가 번갈아들면서 김경아 명창과 함께했습니다. 북장단으로 소리의 흐름을 이끌면서 김 명창과 호흡을 만들어 냈는데, 절정에 다다르는 대목에선 고수들도 더욱 힘차고 경쾌하게 장단을 쳤습니다.
이날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은 단연 ‘귀명창’ 관객들이었습니다. 귀명창들은 공연 시간 내내 지치지 않는 추임새로 김경아 명창과 소통하며 완창 무대를 완성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산제 심청가에서 ‘강산제’는 본래 박유전(1835~1906) 명창의 소리를 이어받은 판소리 서편제를 지칭하는 판소리 유파를 뜻합니다. 서정적이고 담백하면서도 힘있는 소리로 평가됩니다. 특히 극적 전개가 긴밀하고, 소리의 결이 굵으면서도 맑아서 강산제 심청가는 심청의 효성과 희생을 담아내는 데 탁월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공연 후 김경아 명창은 “이제야 조금 편해졌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더 들어보겠습니다.
“그 사이(지난 2019년 완창 이후) 나이가 조금 먹었고 몸은 힘들어진 것 같긴 한데, 훨씬 편해졌습니다. 짧은 공연을 준비할 때는 느끼는 게 별로 없다가, 완창을 하게 되면 항상 깨닫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체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죠.”
김경아 명창은 ‘판소리 불모지’였던 인천에서 10년째 전국의 이름난 소리꾼들을 무대에 올리는 기획 공연 ‘청어람’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경아가 (인천에) 오기 전까지 판소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지난 3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제10회 청어람에도 국가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정순임 명창, 국가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 김영자 명창, 전라북도 무형유산 제2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박양덕 명창, 국가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김일구 명창 등 최고의 원로 소리꾼들이 인천에 모였습니다. 김경아 명창은 “청어람의 다음 10년은 또 다른 모습으로 선보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초인적 공력이 요구되는 완창 공연.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김경아의 완창을 시민들이 많이 들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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