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APEC이 국가와 민간 분야에서 주최국 한국에 의미심장한 선물을 남기고 1일 폐막했다. 먼저 국가 간 외교에선 한·미정상회담의 성과가 컸다. 관세협상 타결도 다행이었지만 ‘핵추진잠수함’이 예상 밖의 선물로 빛났다. 핵잠은 우리 안보의 숙원이었다. 필리조선소 건조를 조건으로 걸었지만 미국의 한국 핵잠 보유 허용은 한미 안보동맹의 신기원이다. ‘미국은 방위비 부담을 줄이고 한국은 해역방위 역량이 높아진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설득에 트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간분야의 젠슨 황(엔비디아)·이재용(삼성전자)·정의선(현대자동차)의 AI깐부동맹은 경주APEC의 결정적 장면이었고, 주인공은 젠슨 황이었다. 한국어 ‘깐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그의 깐부치킨 퍼포먼스와 최신 AI전용 블랙웰GPU 26만개 선물에 한국과 한국인들이 열광했다. 블랙웰GPU는 이재명 정부가 2030년까지 5만개 확보 목표를 발표했을 때 업계가 반신반의했을 만큼 가치 있는 AI생태계의 희토류다.

트럼프의 한국 핵잠 허용 결단은 최고의 유산인 신라금관과 최대의 예우인 무궁화대훈장 덕분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젠슨 황과 한국의 인연들을 찾아내 호들갑을 떨었지만, 깐부동맹과 최신 AI칩 공급 이유는 그의 특별한 한국사랑보다는 철저히 엔비디아의 이익이다. 엔비디아는 블랙웰GPU 26만개로 대한민국 AI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다.

경주APEC의 성과를 이어가려면 대한민국이 동맹국가와 기업들에게 이익 공동체임을 정치로 증명해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과, 국내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신속한 입법 지원이 절실하다. APEC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정치의 시간은 이와 거리가 멀다. 사법개혁을 놓고 여야가 임전무퇴의 배수진을 쳤다. 적대적 막장 정치로 경주APEC의 성과가 신속하게 잊힐까봐 걱정이다. 여야가 반미혐중 기조로 국제외교를 농단하고, 기업들은 또다시 규제완화를 읍소하는 현실을 마주할 판이다.

정치 분열로 대한민국에서 챙길 이익이 지연되고 모호해지면 한미동맹도 깐부동맹도 불투명해진다.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는 19세기 영국 총리 헨리 존 템플의 통찰은 전(全) 시대를 관통하는 국제외교·무역의 금언이다. 이익이 없으면 동맹도 없다. 경주 APEC에서 한껏 고조된 한국의 매력을 분열된 정치로 증발시키면 맞이할 불행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