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우리나라에서 펼쳐진 ‘APEC 2025 KOREA’에서는 유난히 문화적 콘텐츠가 빛을 발했다. 정상들끼리 주고받는 선물에서도 저마다 그 나라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애쓴 모습이 역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신라 금관에 가려 주목도에서 밀리기는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물한 나전칠기 자개원형쟁반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문화의 역수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전칠기는 세계 각국에서 열광하는 K-컬처의 원형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전칠기 기술은 당나라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시들해지고 우리 고려에서 최상의 기술력이 발휘되어 독보적 문화상품으로 우뚝 섰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은 우리의 나전 솜씨를 세밀하고 귀하다고 극찬했다. 당시 고려에서는 기마병의 말 안장에도 나전으로 장식해 서긍을 놀라게 했다.

나무 기물에 자개를 가늘게 쪼개 붙인 뒤 옻칠을 하는 나전 장식은 고려시대 권력의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고려가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긴 뒤인 1245년, 당시 최고 실권자 최이는 고관대작을 집으로 불러 잔치를 열었다. 이때 연회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용도로 나전 장식이 쓰였다. 채색 비단으로 산 모양을 만들고 비단장막을 둘렀는데, 그 팔면(八面)을 은(銀) 단추와 자개로 장식했다. 성 안의 사람들이 담을 두른 듯 몰려 그 연회를 구경했다. 이때의 고려 나전 기술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잘 전수돼 왔다.

이번에 중국에 선물한 나전칠기 쟁반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에서 시작했지만 우리가 더 잘할 수 있게 된 문화 콘텐츠를 전달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고, 중국과 우리의 경제, 문화 교류 역사를 상기시켰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조선이 긴장 관계에 있을 때에도 함경도 회령에서는 우리와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활발했다. 중국에서는 말이나 짐승 가죽을 주었고 우리는 소금, 농기구, 소 등을 넘겼다. 이를 북관개시라고 불렀다.

문화는 서로 교류할 때만이 서로 더 나은 쪽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게 돼 있다. 나전칠기 기술은 한중 문화 교류가 낳은 상승작용의 산물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는 국가 간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 중국으로 간 나전칠기는 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