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에 태를 묻는 조선의 장태 문화
전국 7곳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성종 태실, 일제시대 창경궁 옮겨가
정작 선제적으로 이끈 道 빠져 허탈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신청에 조선 왕실 가봉 태실(2022년 8월24일자 1·3면 보도)이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태실의 연구 성과와 가치를 선제적으로 이끌어냈던 경기도는 정작 빠져 허탈감을 자아냈다. 일제강점기 때 창경궁으로 옮겨진 성종 태실이 원래 자리에 없다는 이유가 컸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신청서에 경상북도(영천시·예천군·성주군), 충청남도(서산시), 충청북도(충주시·보은군)에 있는 7개의 가봉태실이 등재신청 유산으로 올랐다.
명시된 태실은 예천군의 문종·장조, 성주군의 세조, 영천시의 인종, 서산시의 명종, 충주시의 경종, 보은군의 순조태실이다.
K-탄생문화라고 할 수 있는 ‘태실’은 길지에 태를 묻어 아기의 무병장수와 좋은 운명을 바란 장태문화이다. 이 문화를 실행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은 전세계에서 조선이 유일하다.
가봉태실은 이후 왕자가 국왕으로 즉위하면 아기 태실을 권위에 맞도록 격식을 갖춰 태실 석물을 만들어 새롭게 조성한 것을 말한다. 조선왕실이 남긴 태실의 근거와 유적 및 유물은 생명 존중 사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역사적 산물이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태봉과 태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성종태실은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경기도 광주 태전동에 있어야 할 성종태실은 현재 창경궁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산 정상에 남아있던 가봉비와 석물을 태실의 형태를 연구할 목적으로 일본이 창경궁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에 성종태실은 반쪽자리 유물이 됐다. 풍수지리를 따져 길지에 만들어졌다는 태실의 특징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즉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관리계획이 수립돼야 하는데, 국공유지로 지정이 안돼 있는 상황이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여러 관계자들이 성종태실의 본래 위치인 태전동 태봉산에 다시 자리할 수 있도록 바랐지만, 해당 산의 소유주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결국 대상유산 선정기준에서 제외됐다.
경기도가 제안해 경상북도, 충청남도, 충청북도와 함께 구성한 협의체는 그간의 태실 조사와 연구성과 공유,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에 대한 검토와 방향성 등을 함께 모색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끝내 경기도 홀로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할 기회를 잃게 됐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 관계자는 “경기도는 도시화가 진행되는 곳이기에 쉽지 않은 문제였다. 아쉽지만 현재 상황을 안고 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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