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 손끝으로 기사 만났다

훈맹정음 창제 99돌 앞두고 결정

미추홀구 송암점자도서관 도와

제목·사진·도표까지 글로 설명

해외 점자교육·제작기관 ‘호평’

3일 인천시 미추홀구 송암점자박물관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경인일보 기획보도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기사를 점자로 제작한 책자를 읽고 있다. 2025.11.3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3일 인천시 미추홀구 송암점자박물관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경인일보 기획보도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기사를 점자로 제작한 책자를 읽고 있다. 2025.11.3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이다. 1년 전 경인일보 기획취재팀은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이 창안한 한글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시각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살폈다. 박두성 선생의 고향, 인천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배우고 사용하며 겪은 여러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 책 크기, 제본 방식… 시각장애인 위한 맞춤형 ‘점자책’ 제작

올해 훈맹정음 창제 99주년(한글 점자의 날)을 앞두고 수개월 전 취재팀은 지난해 보도한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기획을 점자책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송암점자도서관이 점역을 도왔다.

나흘에 걸쳐 보도한 기획기사 13편의 텍스트 파일을 지난 1월 송암점자도서관에 건넸다. 텍스트 파일만 제공하면 곧바로 점역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점자책을 만들기 위해선 점자의 크기와 간격, 종이 선별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

보통 활자로 된 소설과 시집은 가로 148㎜, 세로 210㎜의 용지를 사용하지만, 경인일보 기획보도 점자책은 가로 240㎜, 세로 280㎜ 크기의 용지를 사용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배포하는 ‘점자 도서 제작 지침’을 따른 것이다. 책은 용지에 구멍을 뚫어 링을 끼우는 방식으로 제본했다. 책을 읽다가 손을 다치지 않도록 링의 끝부분이 날카롭지 않게 만들었다. 긁히거나 찍힐 수 있는 책의 표지는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점자 스티커를 붙여 제목을 표시했다. 사진과 도표가 담은 정보도 빠짐없이 전달하기 위해 시각 자료를 글로 설명했다.

점역을 요청한 지 한 달 뒤인 2월17일, 송암점자도서관 점역실에선 점자를 용지에 찍어내는 점자 프린터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한비 점역교정사는 잘못 인쇄된 내용은 살피고 용지에 링을 끼워 제본하고 있었다. 그는 “보통 점역을 요청받은 원본 파일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번엔 다행히 경인일보에서 텍스트 파일을 제공해 비교적 빠르게 점자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읽을 권리’ 보장하는 계기되길…

시각장애인들과 점자 관련 기관은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기획 점자책을 크게 반겼다. 송암점자도서관은 열람실에 기획 점자책을 비치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모두가 이를 볼 수 있게 했다.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휴게공간에서도 기획 점자책을 찾을 수 있다.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국내 점자 사용 실태를 짚은 언론 보도가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점자로 만들어져 기쁘다”며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모든 콘텐츠가 시각장애인들도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신호탄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취재팀이 방문한 해외 점자 교육·제작기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스웨덴시각장애인연합회(Synskadades Riksforbund, SRF)에서 점자 활성화 업무를 맡은 헨릭 예때손(Henrik Gotesson)은 “시각장애인들도 제한 없이 언론 보도를 접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도에 감사하다”며 “스웨덴 점자와 한글 점자는 차이가 있지만, 한글 점자도 익혀 경인일보 기획 점자책을 읽어보겠다”고 했다.

(주)도서출판점자를 이끄는 시각장애인 김동복 대표는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시각장애인들이 곧바로 볼 수 있도록 자동 점역 기술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탑재하면 좋겠다”며 “홈페이지에 경인일보의 모든 기사가 점자 파일로도 등록된다면, 시각장애인의 정보권 보장을 향한 획기적인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