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시인’ 김소월과 비견되는
한용운 시집, 내년 발간 100주년
불교, 가장 높은 차원 이해·표현
당대성·확장가능성 등 새삼 찬란
올해는 김소월(1902~1934)의 시집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소월은 1920년대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손꼽혔을뿐만 아니라, 당대 문학사의 주류였던 서구 낭만주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정조와 목소리를 바탕으로 근대 자유시의 한 전범을 이룬 탁월한 시인이다. 흔히 그를 ‘국민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비유하려는 일반인들의 욕구 또한 이러한 그의 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민요조 서정시를 기반으로 하여 초기 자유시 양식을 탁월한 수준에서 보여준 가편들을 많이 썼다. 그가 남긴 시편들의 기본 특성은 반복과 평형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성에 있다. 또한 그의 시는 부재하는 누군가를 향한 상실과 그리움의 모티프가 주류를 이룬다. 그 세계는 자연스럽게 과거 지향성을 불러오면서 그로 하여금 정한(情恨)의 시인이 되게 해주었다. 이러한 청각적 유창함과 정한의 미학은 그대로 민요의 특성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내년에는 소월과 여러 모로 비견되는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시집 ‘님의 침묵’이 발간 100주년을 맞는다. 이 시집 역시 만해 개인의 성취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시의 독자들에게 남다른 충격이자 감동의 세계로 남아 있다.
만해는 백담사로 출가한 후 시베리아, 만주, 일본 등지를 떠돌다가 만주에서 의병학교 설립에 가담하였고 이시영 등과 함께 독립군을 모으는 학교 사업에 동참하였다. 1911년 박한영 등과 함께 친일불교 반대운동을 펼쳐 한국불교를 일본에 예속시키려던 이회광 일파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하였고 범어사에서 대장경을 열람하여 대중불교의 성전 ‘불교대전’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1926년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을 펴냈다. 비유하자면 ‘불교대전’이 중생의 눈을 부처의 차원으로 이끈 것이라면, ‘님의 침묵’은 부처의 눈으로 중생에게 다가간 것이다. 그의 나이 마흔여덟에 나온 ‘님의 침묵’은 그의 불교사상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의 결실이다. 이 시집은 만해 사상의 총화이며 그 예술적 승화인 동시에 대중화의 산물이기도 한 셈이다. 그동안 ‘님’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뒤따랐다. 연인, 조국, 불타, 진리 등으로 지목되기도 했고 어떤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현존재의 부정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할 진정한 자아의 경지를 가리킨다는 해석에 이르기도 했다.
만해 시편의 저류에는 이별과 사랑의 반복 구조가 잠복해 있다. 언제나 님과의 이별이 전제되고 그럼에도 지속되어가는 사랑의 마음이 하염없이 펼쳐진다. 만해는 시집의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라고 하여 님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세속적 님에 대한 해석을 거부하고 비판하면서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더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라고 하여 허상을 쫓는 세태, 자기 중심적으로 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경향에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자신의 님은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라고 밝힌다. 이때 어린 양은 속악한 현실에서 고통 받는 자, 선한 세계를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제물의 상징일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의 세계이면서도 무수한 ‘님’으로서의 집단적 표상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님을 추구하는 ‘나’의 윤리적 의지와 행위인데 그의 시를 일컬어 ‘존재와 부정의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 뜻하며, 역설과 반어가 그 안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이런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만해는 원효, 경허와 함께 불교의 제도적 심부에 존재하지 않았으면서도 불교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표현한 대표적 승려이다. 그리고 그 사상을 육화하여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증언한 탁월한 근대 시인이었다. ‘님의 침묵’이 품고 있는 훤칠한 당대성과 지속적 현재성, 그리고 단단한 정체성과 유연한 확장 가능성에 새삼 눈이 부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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