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산교도소 무기수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공소시효마저 만료된 미제사건은 2003년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살인의 추억’으로 박제됐고, 1991년 10차 사건 이후 갑자기 중단된 범행으로 전문가들은 범인의 사망을 단정했던 때였다. 정작 이춘재는 청주에서 연쇄살인을 이어갔다. 1994년 처제 강간살인범 이춘재의 DNA가 25년 만에 ‘괴물의 시간’을 복원했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춘재의 DNA를 30년 넘게 보관하며 대조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경찰의 집념에 찬사가 쏟아졌다. 살인 14건, 강간 19건 등 경찰이 집대성한 이춘재의 엽기적인 범죄행각엔 경악했다. 화성시와 시민이 반색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정정되면서,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그러나 이춘재는 또 다른 추악한 진실의 문을 열었다. 30여년 동안 은폐된 경찰의 불법 강압수사가 드러난 것이다. 이춘재의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조작돼 20년을 복역한 윤성여씨의 유죄가 이춘재의 자백으로 뒤집어졌다. 윗선의 서슬퍼런 압박에 경찰이 범인을 만들자 검찰은 공소를 유지했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2020년 재심 재판정에서 검사는 사과하며 무죄를 구형했고 법원도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이 또 한 명의 강압수사 피해자의 재심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이 화성 9차 사건 범인으로 조작하려다 명백한 DNA 증거가 나와 실패하자 강제추행치상 사건 진범으로 조작했던 윤동일씨다. 집행유예로 출소한 윤씨는 암으로 1997년 사망했다. 흉흉했던 그 시절 화성시민들은 여자는 죽고 남자는 경찰에 끌려가 치도곤 당할까 봐 자발적으로 외출금지령을 지켰다. 두 윤씨뿐 아니라 강압수사 피해자가 20여명에 이르고 극단적인 선택과 불행한 최후를 맞은 이들도 있다.
야만적인 경찰과 법조의 양심을 등진 검찰과 법원이 합작해 만든 범죄조작의 추억이다. 사법개혁법안으로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게 됐다. 검찰은 보완수사권이라도 남겨달라 읍소한다. 이춘재 사건은, 이춘재를 영원히 잡지 못했어도 윤성여, 윤동일 같은 피해자를 만들면 안된다는 사법적 교훈을 남겼다. 강압수사도 무성의한 수사종결도 안된다. 경찰의 수사독점으로 예상되는 폐단이다. 검경의 위계가 깨지고 짬짜미가 불가능한 시절이다. 경찰 조직을 위해서라도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는 필요하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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