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도시동네 길 따라

장소 발굴한 구가도시건축 대표

기록하며 쌓아온 ‘선의 고고학’

건축 인생 두번째 매듭 ‘응원’

조정구+구가도시건축 作 ‘서울 한남동 언덕’(1천500여 채 집과 골목) 모형. /전진삼 제공
조정구+구가도시건축 作 ‘서울 한남동 언덕’(1천500여 채 집과 골목) 모형. /전진삼 제공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건축가 조정구(58)씨가 이끌고 있는 구가도시건축의 25주년 기념 전시가 종반전으로 달려가고 있다. 지난 10월10일 개막한 전시는 오는 11일 막을 내린다. 올해 국내에서 선보인 여러 건축전시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전시는 근대건축가 박길룡 선생이 설계한 舊 구영숙 소아과(1936년, 서울 종로구 견지동 30)에서 열리고 있다.

건축사무소를 설립하고 사반세기를 버텨온 것만도 대단한데 저간의 행로가 타자의 시선을 모으고, 용기를 북돋울 정도이니 그 의미가 작지 않다.

1985년 1월, 나는 서울 원서동의 공간연구소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 마지막 날 공간그룹의 설립자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 주자 중 한 분인 김수근 선생이 주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공간그룹은 선생에 의해 1960년 건축사무소로 창립하였으니 그 해는 선생에게 25주년이 되는 때였다.

신입사원 동기생 10여 명을 사옥 내 공간미술관의 장 테이블 양쪽에 앉히고는 여러 말씀이 있었는데 그중 아직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내 건축을 시작하고 25년이 지나는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이제 막 몸을 풀고 건축이라는 마라톤 레이스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게 나, 김수근이다. 그럼 여러분들은….”

김수근 선생에게 건축가로서의 25년은 파란만장한 시간이었고, 한국 현대건축 역사에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시간이었다. 그랬던 분이 비로소 마라톤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하였으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선생의 전장(戰場)은 이미 국내 무대를 넘어 세계무대로 옮겨간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선생은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건축가에게 25년이라는 매듭은 중요한 사건이다. 그 시점을 전후로 건축가의 대표작들이 생산될뿐더러 건축가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지는 까닭이다.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의 25년을 김수근 선생의 행로에 겹쳐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임과 동시에 다가올 앞날의 진화를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0년 11월 조 대표의 구가도시건축은 이 사무소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수요답사를 시작한다. 그렇게 서울의 동네를 답사, 기록해온 횟수가 현재 1천108회를 지나고 있다. 금회 전시의 부제가 ‘우리 삶의 형상을 찾아서’로 정해진 배경이다.

‘선의 인류학’(Lines)을 쓴 팀 잉골드는 ‘사람들이 오고 가지 않는다면, 장소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는 ‘삶이 장소 안에서 살아질 뿐만 아니라 길들을 따라 살아진다고 추론’한다. 조 대표 또한 오래된 도시동네의 길을 따라 걸으며 25년간 장소를 발굴해온 장본인이다. 우리들 삶의 터무늬를 관찰하고, 그리고, 기록함으로써 그가 쌓아온 선의 고고학은 한국 건축이 세계로 진화하는 에너지원으로 작동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선을 통한 그의 외길 건축 인생이 더 넓은 세상에서 주목되는 두 번째 매듭의 시간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크다.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