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국회의사당 전경. /경인일보DB
사진은 국회의사당 전경. /경인일보DB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친족상도례’의 대체 입법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입법 시한은 올해 말까지, 불과 한 달여 남아있다.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할 기회임에도 국회는 1년 넘도록 미적거리고 있다. 시한을 넘겨 효력이 사라진다면, 사회적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친족상도례’는 친족 간 재산 범죄에 대해 가족 내부의 결정을 존중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지난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친족 간의 범행과 고소 관련 내용인 해당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사기, 공갈, 절도, 횡령 등 권리행사방해죄의 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 72년 동안 가족의 재산 관리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정서가 이미 팽배하다.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겠다는 당초의 법 취지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불합치 결정 후 발의돼 법사위 소위에 계류된 형법 개정안은 총 6개다. 하지만 진척이 없다.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국회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낙태죄가 대표적 사례다. 2019년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관련 규정과 처벌 근거가 상당수 사라진 채 6년째 방치 상태다. 후속 입법 지체로 2021년 낙태죄는 사문화됐지만, 임신 36주 차 낙태 논란으로 입법 공백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 헌재는 옥외집회 금지 시간대를 ‘해가 진 뒤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로 규정한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2010년 입법 시한이 경과됐다. 미혼부 출생신고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제한하는 ‘국민투표법’도 제자리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시한을 정해 개정을 권고해도 강제성은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위헌적 법 제도가 법문으로 살아있는 이유다. 무법 상태를 장시간 방치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헌법 수호의 보루인 국회가 헌법불합치 법률을 방치한다면 스스로의 헌법적 권능을 부정하는 일이다. ‘친족상도례’ 합헌 입법이 지체된다면, 낙태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이는 국회의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