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80년 섬유공단 중심

女 노동자들 ‘고노동·저임금’

남부 산업지대 네트워크 시초

1990년 1월 수원 성균관대서

민주노총 전신 전노협 창립

기존 생활권 연대 존재 영향

위장 공간이던 ‘넝쿨다방’ 등

권력 저항 vs 노조 해체 격돌

대부분 터는 남아있지만

표지판 등 없어 아쉬움

1960~70년대 수원시 평동에 자리한 선경직물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재단·섬유 작업을 하던 당시를 촬영한 사진이 ‘수원선경산업관’에 전시돼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60~70년대 수원시 평동에 자리한 선경직물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재단·섬유 작업을 하던 당시를 촬영한 사진이 ‘수원선경산업관’에 전시돼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평범해 보이는 수원의 거리엔 1960~80년대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린 여성 노동자들의 땀, 경찰 봉쇄를 뚫고 전노협을 출범시킨 이들이 흘린 피, 감시 속에서도 민주노조를 지켜낸 자들의 흔적이 있다.

민주노조 운동은 단순히 임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부당해고된 이웃을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하고, 산재로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고,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 가족과의 저녁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이 실천들은 지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넓히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는 희미해졌다. 공장 터는 아파트가 됐고, 노조 건물들은 다른 용도로 바뀌었으며, 전국 조직이 태동했던 대학교 강당에서 더는 그날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어디에도 설명이나 표식은 없다. 기억은 남았지만, 기억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 1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여성위원회는 지역 내 민주노조의 역사를 되짚으며 옛 장소를 걸었다. 수원역에서 출발해 평동·고등동·성균관대·화성행궁까지. 그 길 위에는 질문이 남았다. 누가 이 도시에서 인간다운 삶을 지탱했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50여 년의 세월을 안고 오늘날에 이른 수원 노동운동사의 주요 이슈들을 짚어봤다.

■수원 산업화의 바닥을 받친 손들. 섬유 공단 여성들이 만든 도시 경제의 토대

수원시 평동에 위치한 ‘수원선경산업관’. 당시 선경직물이 있던 자리에 해당 기념관이 들어섰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수원시 평동에 위치한 ‘수원선경산업관’. 당시 선경직물이 있던 자리에 해당 기념관이 들어섰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가장 먼저 수원시 평동을 찾았다. 현재 중고차매매단지가 들어선 이곳에는 원래 선경직물(현 SK케미칼)이 자리했다. 1960~70년대 초창기 공장은 24시간 맞교대 체제로 돌아갔고, 방적·직조 공정의 다수를 담당한 것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베틀 소리와 약품 냄새 속에서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을 버텼다.

‘결혼 전까지만 일하는 임시 노동력’으로 여겨지던 이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면서도 급여 대부분을 집으로 송금했고, 이는 곧 가족 생계의 기반이 됐다. 회사는 사내 실업학교를 운영하며 야간수업을 병행하도록 했다.

이렇게 형성된 섬유공단 생활권은 수원에 국한되지 않았다. 화성·오산·용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고, 이는 경기 남부 산업지대 전체를 관통하는 노동 네트워크의 시초였다.

수원 섬유산업의 여성 노동은 단순히 ‘값싼 노동력’이 아니었다. 그들의 임금과 동선은 도시 생활경제의 핵심 축이었다. 실제 선경직물 월급날은 수원 남문(팔달문) 시장의 가장 큰 대목이었다고 한다. 여성 노동의 손끝에서 도시의 소비·유통 구조가 움직였던 셈이다.

이런 방직·합섬 공정은 선경직물만의 사례가 아니다. 당시 수원에는 대한방직과 한일합섬 등 주요 섬유공장이 함께 들어서 있었고, 여성 노동은 도시 산업구조 전반을 떠받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자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한일타운) 등으로 바뀌어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조직은 서울이 아니라 수원에서 시작됐다. ‘전노협’ 창립식

1990년 1월22일, 수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 당시 제작했던 손수건 포스터.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90년 1월22일, 수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 당시 제작했던 손수건 포스터.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자 한일합섬, 태평양화학 등의 사업장에서도 농성이 전개됐다. 한일합섬 수원공장은 마산공장과 연대하는 등 지역을 넘어선 움직임도 나타났다. 다만 선경직물은 가족주의 경영 방식으로 노조 결성 움직임 자체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6월에는 경기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의 용역 철폐 투쟁을 계기로 관내 7개 노조가 연대하며 ‘수원지역 노조 간담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개별 사업장을 넘어 전국적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마침내 1990년 1월 22일,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가 열렸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적·자주적인 전국 노동자 조직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장소는 서울도, 울산·창원 같은 대규모 공단도시도 아닌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캠퍼스였다.

수원이 선택된 이유가 있었다. 1970~80년대 섬유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권 연대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숙사, 작업장, 노동상담소, 성당, 지역 모임터를 따라 ‘공장 담장 밖의 조직망’이 작동하고 있었다. 해고자 복직 투쟁, 조합원 학습, 지역 연대가 일상적으로 가능했던 도시였다.

이곳으로 모이기까지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시 정부는 전노협 창립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서울 주요 대학과 공단 밀집 지역 진입을 차단했다. 창립 준비위원회는 위장조를 꾸려 이동하는 등 거센 경찰 봉쇄망을 피해 경기 남부로 향했다. ‘새끼손가락에 파란 리본을 단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는 정보가 장소 인근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그렇게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서 치러진 전노협 창립대회에는 전국 456개 단위노조, 16만6천여 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전노협에서 시작된 축은 이후 1995년 민주노총, 1997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출범으로 이어진다.

1990년 1월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가 열렸던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캠퍼스. 외관은 리모델링을 거치며 붉은 벽돌 흔적이 사라졌지만, 내부 벽면에는 벽돌 마감이 남아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90년 1월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가 열렸던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캠퍼스. 외관은 리모델링을 거치며 붉은 벽돌 흔적이 사라졌지만, 내부 벽면에는 벽돌 마감이 남아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그 자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창립대회가 열렸던 성균관대 내 해당 건물은 외관이 리모델링됐다. 당시 창립식에 참석한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붉은 벽돌’ 건물은 매끈한 외장재로 바뀌었고, 창립식이 열렸던 강당은 겨우 내부 구조만 원형을 간직하고 있었다.

■경기 노동운동의 중심지 고등동. 다방으로 위장한 대공분실까지, 연대와 감시가 맞붙었던 골목

1987년 이후 수원시 고등동에 터를 잡은 노동사회단체들의 당시 약도. ‘넝쿨다방’은 다방으로 위장한 대공분실이었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제공
1987년 이후 수원시 고등동에 터를 잡은 노동사회단체들의 당시 약도. ‘넝쿨다방’은 다방으로 위장한 대공분실이었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제공

전노협 창립 이후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은 활기를 띠었다. 경기 남부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장소는 수원 고등동이었다. 1990년대, 굵직한 노동운동단체들이 이곳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전교조 경기지부, 경기노련, 경기남부노운협 등이 이 골목에 사무실을 차렸다.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들과 신규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부당해고 당하면 고등동으로 간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골목 건너편에는 감시의 시선이 있었다. 전교조 사무실과 경기노련 사무실 바로 맞은편, ‘넝쿨다방’이다. 다방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대공분실 요원들이 상주하던 위장 공간이었다. 창문 너머로 노조 간부의 출입 시간, 회의 참석자, 신규 조직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권력에 맞서 노조를 조직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해체하려는 정보기관이 같은 골목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1990년대, 수원시 고등동에 터를 잡은 경기도 노동사회단체들을 감시하기 위해 차린 위장 업소(넝쿨다방)가 있던 자리. 현재는 다른 업종의 가게로 바뀌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90년대, 수원시 고등동에 터를 잡은 경기도 노동사회단체들을 감시하기 위해 차린 위장 업소(넝쿨다방)가 있던 자리. 현재는 다른 업종의 가게로 바뀌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감시는 지켜보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노조 사무실에서 나온 쓰레기봉투를 몰래 수거해 찢어진 문서를 다시 이어붙여 내용을 확인했다. 이를 활용, 사건을 조작해 노조 간부를 구속시킨 일도 있었다. 다방 종업원으로 위장한 요원이 과일과 오징어를 들고 경기노련 사무실을 드나들며 조합원 동향을 캐기도 했다.

이선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총무국장은 “과거 고등동은 경기남부 노동조합의 메카였다. 민주노조 사무실들이 이 골목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만큼 감시도 거셌다”며 “지역 상인들은 양복 입은 낯선 남성이 나타나면 눈여겨보고, 노조 회의 이후 버린 문서 조각이 담긴 쓰레기봉투가 사라지면 바로 알려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금 해당 건물들에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넝쿨다방 역시 흔적 없이 사라졌다. 현재 이 골목은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공간으로 변모했다. 과거 민주노조 거점은 오늘날 새로운 노동 주체들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1990년대 경기 ‘노동의 메카’로 불리던 수원시 고등동. 이선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총무국장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노동사회단체들의 당시 위치와 현장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90년대 경기 ‘노동의 메카’로 불리던 수원시 고등동. 이선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총무국장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노동사회단체들의 당시 위치와 현장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장소는 남았지만, 이 도시에는 ‘기념’이 없다

이외에도 수원의 노동사에는 더 많은 사건과 희생이 있었다. 1996년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파업 투쟁, 2000년 화서역에서 발생한 의보총련 경기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활동가 최진욱(당시 29세)의 감전사고와 죽음….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공간 대신 증언 속에서만 남아 있다.

전노협이 출범했던 성균관대 학생회관, 민주노조가 모였던 고등동 골목, 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생활하던 공장 기숙사 터, 위장 대공분실이 숨어있던 넝쿨다방 자리. 터는 남아 있지만, 이곳이 지역의 민주주의를 다져왔던 역사적인 현장임을 알 수 있는 표지나 설명은 없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도시 속에 묻혀버렸다.

조귀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본부장이 수원시 평동 선경직물 터에 자리한 ‘수원선경산업관’에서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과 생활 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조귀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본부장이 수원시 평동 선경직물 터에 자리한 ‘수원선경산업관’에서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과 생활 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조귀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본부장은 “경기도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수원이라는 지역을 통해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역사 기행을 준비했다”며 “민주노조의 역사는 개별 사업장을 넘어선 연대 속에서 형성돼 왔다. 이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함께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 1월22일, 수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 당시 제작했던 천 포스터를 들고 창립식 현장에 있었던 이선희(왼쪽)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총무국장과 조귀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본부장이 행사가 열렸던 건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제공
1990년 1월22일, 수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 당시 제작했던 천 포스터를 들고 창립식 현장에 있었던 이선희(왼쪽)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총무국장과 조귀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본부장이 행사가 열렸던 건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제공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