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남과 비교하며 마음껏 창작 못해

외롭거나 고군분투 되지 않도록

기성세대, 말과 행동 돌아봐야

김성중 소설가
김성중 소설가

소설가로 살아가려면 소설과 나를 부양해야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강의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내 독서의 일부는 학생들의 습작이며, 내 인생이 캄캄하고 혼란스러웠을 때 나를 구해준 것도 다름 아닌 ‘일’ 그 자체였다. 강의실로 걸어가는 동안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적 자아는 퓨즈를 끄고 씩씩하고 활기찬 공적 자아를 앞세우게 되었는데, 이런 전환은 고통에서 나를 떼어놓아 안전지대에 세우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모르지만 내가 그때 읽었던 서툴고 엉성한 소설들이, 소설을 흉내내며 첫걸음을 내딛던 이야기들이 나를 보호하는 완충재였다. 아무리 강사료가 쥐꼬리라고 해도 이 일에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에 소설을 쓰는 학생들과 강의 후 치맥타임을 가졌다. 대화 중 실감하게 된 사실은 이십대 초반의 친구들이 벌써부터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근래의 소설 창작 지망생들은 ‘내 글이 누구도 아프지 않게 했으면 좋겠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 것 같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창작자에게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자기검열로 작동하기도 하고, 사회를 먼저 떠올리면 이야기의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 게다가 ‘예비 예술인’으로 간주되어 글의 쓸모나 가치에 대해 헤아려보게 된다는 말도 당황스러웠다. 예술에 예비가 어디 있으며 문학은 김현 선생님이 일찍이 말씀하셨듯이 쓸모없음에 그 쓸모가 있는 것이니까. ‘예비 작가로서 자신을 증명할 가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학생들에게서 나왔다기보다 주변에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창작을 전공으로 한 학생들 전부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 몇 명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인 창작과라면 그것은 문학주의가 아니라 엘리트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엘리트주의는 철저히 반문학적인 태도를 가진다. 소설은 괴짜와 아웃사이더,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에 반해 엘리트주의는 지도적 위치에 서서 중심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깔려 있으니 문학에서 인간을 접근하는 방식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대화 중에 자주 등장하는 ‘사회’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 손처럼 학생들에게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었다. 사회라고 뭉뚱그려 써 놓지만 갖은 매체를 비롯해 가족과 친구, 주변의 어른이나 지인들의 혀끝에서 실어 나르는 말일 것이다. 그 메시지가 온통 ‘너를 증명하라.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존재인지 증명하라’는 거라면 이것이야말로 자존감 도둑이 아닐 수 없다. ‘증명에 실패하면 가치 없는 인간으로 판명되고,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겁박이 공기 중에 미세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어 젊은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증명’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증명은 일종의 ‘승인’으로, 외부에 달려 있는 평가와도 같다. 그러니 ‘너를 증명하라’는 정언명령을 지속적으로 들으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증명을 승인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 남과 비교하기가 바빠진다.

물론 이것은 오래된 플롯이다. 그런데 SNS나 커뮤니케이션의 강화로 더 심해지고 선명해졌다는 실감이 든다. ‘자기 증명’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는 예술대학 학생들조차 ‘좋아하는 세계를 제 스타일대로 만들어서 밖에 내 보이는’ 창작 행위를 마음껏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십대 초반은 꽃과 열매를 맺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무슨 성분의 흙을 가졌는지, 나라는 토양에 대해 알아차리고 비옥하게 만들어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산문가가 되려면 그게 맞다. 산문은 단기간에 좋아질 수가 없는 근육과 심장을 필요로 하니까.

나는 열심히 화를 내는 것으로 내 무력을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학생들은 각자의 게릴라 전투로 이 유독한 공기를 뚫고 나갈 것이다. 그것이 외롭거나 고된 분투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자존감 도둑이 되지 않도록, 나부터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 기성세대가 할 일일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