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기록·2관왕… “인천, 소속은 아니지만 편한 곳”

조선소 용접 노동 중 추락사고로 오른쪽 무릎 아래 절단

처음엔 빈 봉 들어도 몸 떨려 1kg씩 올리며 성취감 더해

 

“장애인 된 현재의 삶에 만족”… 자신감으로 지은 미소

캐나다에서 의족 보며 ‘베리 굿’ 해줘, 창피가 아니란 생각

올 시즌 마무리했지만 부담감, 내년 아시안 패러게임 목표

최근 부산 일대에서 개최된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와 ‘제45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인천시 선수단은 올해 대회에서도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는데요. 경기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 선수들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써 내려갔습니다.

올해 전국체전과 전국장애인체전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장애인 역도에서 한국 신기록을 달성한 전나라수 선수입니다. 그의 이야기로 올해의 체전을 마무리합니다.

■ ‘한국 신기록 달성’ 장애인 역도 정상 올라

“대회 끝나고 여러 시·도에서 러브콜도 받았지만, 저는 인천에서 계속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7일 오전 인천시 장애인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난 전나라수 선수가 제45회 전국장애인체전에서 딴 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1.7/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7일 오전 인천시 장애인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난 전나라수 선수가 제45회 전국장애인체전에서 딴 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1.7/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7일 오전 전국장애인체전 후 짧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전나라수(38)를 인천시 장애인 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제45회 전국장애인체전(10월21~26일) 역도 남자 +107㎏급 벤치프레스종합 OPEN(선수부)에 출전해 한국 신기록과 2관왕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전나라수는 파워리프팅(200kg) 2위를 기록했지만, 웨이트리프팅(220kg)에서 한국신기록으로 1위를 지켜내며 종합(420㎏)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전나라수가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처음 딴 값진 금메달입니다. 그는 제42회와 제43회 대회에서 2위라는 성적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전나라수는 인천에서 선수 생활을 해오고 있는데요. 그는 한국 신기록을 세운 역도 스타지만, 인천시장애인체육회 직장운동경기부 역도팀 소속은 아닙니다. 여건상 현재 실업팀 인원이 3명으로 제한적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전나라수는 인천 장애인역도팀의 지도자, 운동 환경, 팀원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타 시·도 실업팀의 러브콜도 고사할 정도입니다.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돈만 보고 움직이면 운동을 게을리하게 되고 나태해지고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다른 팀에 가서 지금처럼 좋은 감독님, 팀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역도도 개인 종목이긴하지만 팀원 간의 분위기가 훈련할 때 너무 중요하거든요. 마음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인천이라 인천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 평범한 청년 노동자에서 장애인 역도 선수로

10여년 전, 스물여섯의 전나라수는 울산의 대형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선박 건조 작업(용접)을 하는 노동자였습니다. 고향인 경기도 부천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성실하게 일하던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추락 사고를 겪으며 오른쪽 다리를 무릎 아래로 절단해야 했습니다.

큰 사고 이후 의족을 착용하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그가 받을 수 있었던 산재 연금은 매달 50만원뿐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며 예전처럼 사회 생활을 하고자 일자리를 찾아 용역사무실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주민센터의 청소일도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전나라수는 가족들에게 평생 의존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산재연금을 쪼개 고시원에서 지내며 홀로서기를 시작했습니다.

7일 오전 인천시 장애인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난 전나라수 선수의 손에 굳은 살이 박혀 있다. 2025.11.7/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7일 오전 인천시 장애인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난 전나라수 선수의 손에 굳은 살이 박혀 있다. 2025.11.7/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전나라수가 장애인 역도를 처음 접한 것은 2018년입니다. 지인의 권유로 인천의 장애인역도장을 방문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역도 이전에는 2014~2017년 장애인 마라톤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운동 경력이 있었지만, 역도와의 첫 만남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빈 봉을 들 때도 몸이 바들바들 떨었어요.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훈련을 하면서 몸도 커지고 1kg씩 무게를 올리고 성공할 때마다 성취감이 컸어요.”

전나라수는 팔 근육을 키우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훈련했습니다. 몸을 키우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2019년 열린 제39회 전국체전에 인천장애인역도연맹 소속으로 첫 출전한 전나라수는 종합 5위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전나라수는 당시에는 120kg도 겨우 들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2020년~2022년 서울, 2023년 광주 소속으로 전국장애인체전에 출전하며 실력이 급성장했습니다. 그는 이듬해부터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장애인 역도를 시작할 때 마른 체형의 전나라수 선수. /전나라수 제공
장애인 역도를 시작할 때 마른 체형의 전나라수 선수. /전나라수 제공

■ 장애는 한계가 될 수 없다

전나라수는 “장애인이 된 현재의 삶이 좋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후에도 끈질김으로 사회에 편견을 부수기 위해 도전한 전나라수였습니다.

“제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전문 체육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겠어요. 매일 미루는 것 없이 훈련하고 운동하다보니 목표가 생겼고, 더 올라가고 싶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나라수는 자신의 의족을 감추지 않는 반바지 차림을 즐긴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아이언맨 삼촌’이라고 설명할 정도라는데요. 그가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게 된 것은 캐나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겪은 경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7일 오전 인천시 장애인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난 장애인역도 간판 선수 전나라수. 2025.11.7/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7일 오전 인천시 장애인역도팀 훈련장에서 만난 장애인역도 간판 선수 전나라수. 2025.11.7/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제 다리를 보고 ‘베리 굿’이라며 한마디씩 했어요. 장애에 대해 창피할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내 상황을 부정하며 스트레스 받고 속이 상하기보다는 빨리 받아들이고 제2의 인생을 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전국장애인체전을 마치고 올해 시즌을 마무리한 전나라수는 어깨가 무겁다고 합니다. 오는 10일부터 다시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나갈 예정인데요. 이번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보인 전나라수 선수의 가까운 목표는 다음해 열리는 제5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패러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입니다.

“인천에서 운동하면서 커리어를 쌓아 나가고, 또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활약해보고 싶습니다.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기록을 찍고 나면 그걸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동료가 되고 싶어요.”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