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의 도전

뤽상부르 장기 투숙하는 이윤숙

매니저·청소부·투숙객과 이야기

호텔 로비를 성공적 무대 탈바꿈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신효진 작, 이래은 연출, 10월27일~11월11일, 국립정동극장 세실)는 어떤 장소가 무대의 공간으로 적합한지 아닌지를 묻게 하는 작품이다. 호텔 로비를 장소로 설정했으니 말이다. 연극에 적합한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대의 이야기가 더 선호하는 장소는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응접실, 마당, 법정, 그리고 광장이 그런 장소에 해당한다. 이러한 장소를 오래도록 무대 공간으로 설정해 온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호텔 로비를 무대 공간으로 설정한 작품은 흔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호텔 로비에서는 이야기를 펼치기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호텔 로비는 스치는 공간이다. 이동하는 공간이다. 머물지 않는다. 무대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얼마든지 장소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한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니다. 지금까지는 일반론이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도무지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 않은 장소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폭발하여 진정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영화 ‘터미널’이 그중 하나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 장소는 공항이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항은 그저 스치는 장소일뿐이다. 이야기를 만들기 어렵다. 호텔 로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영화 터미널은 그 한계를 넘어선다. 공항이 이야기의 장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작가의 위대함은 흥미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데 있다. 흥미로운 공간의 발견 없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할 수는 없다. 좋은 이야기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공간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호텔 로비를 장소로 택한 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는 하나의 도전이다. 이 이야기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이윤숙이다. 윤숙은 호텔 뤽상부르에 장기 투숙 중이다. 소설가는 아니나 소설을 쓰고 있다. “이름나야 소설간가요, 뭐. 지금 쓰는 게 중요하지.” 그렇다. 이제 호텔 로비에 오래 머물러도 되는 이야기 장치 하나를 갖게 되었다. 윤숙은 로비에서 소설을 쓰며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호텔 매니저, 직원, 청소부에서부터 투숙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싱글 웨딩 촬영을 온 윤과 김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텔 로비를 이야기 장소로 만드는 또 다른 장치로는 무화과와 싱글 웨딩 촬영이 있다. 무화과 모티프는 여러 에피소드를 환기하는 장치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말이다. 윤숙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중에 월남한 사연을 환기하거나 호텔과 이웃한 교회의 찬송가와 교인의 사연을 연결한다. 또한 무화과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소설을 쓰는 윤숙을 닮았다. “무화과는 이름이 잘못됐어. 꽃이 없는 과일이란 뜻인데, 열매가 그냥 꽃 그 자체거든. 이게 그냥 다 꽃인데.” 글 쓰는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윤숙은 무화과를 닮았다.

싱글 웨딩 촬영 모티프를 통해 윤숙은 윤과 김을 만난다. 김의 싱글 웨딩 사진을 윤이 찍는다. 둘은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윤과 김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야기장수, 2024)의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윤과 김은 아직은 함께 살지 않지만 머지않아 조립식 가족을 만들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칠십대의 윤숙이 비혼인 설정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는 작은 서사를 펼치고 있는 작품이다. 덧붙여 호텔 로비를 성공적으로 무대의 장소로 탈바꿈한 작품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 윤숙만은 아닐 것이다. 연극의 윤숙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의 수많은 윤숙도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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