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없는 정부를 택하느니,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지극한 사명임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비유한 말은 없다. 기자는 ‘기레기(기자+쓰레기 합성어)’라 폄훼되고 급기야 보도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믿지 못하고 그 의도부터 의심받는, ‘신문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언론의 사명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고발하는 데 있음은 변함없다.

지난 80년, 경인일보는 경기도·인천의 ‘감시견’이었다. 광복 이후 변변하지 못했던 지역의 생태계를 만들고 지키며 끊임없이 지역의 권력을 감시하고 고발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지역의 토착세력부터 교육계, 경제, 정치권까지 수도권 시민들의 눈을 피해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부정부패의 현상들을 면밀히 살피고 철저하게 취재해 보도했다. 그 결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이 출범한 1990년 이후 경인일보가 72회에 걸쳐 기자상을 수상한 바탕에는 횡행하는 지역비리사건을 포착해 고발한 사건들이 적지 않다.


1996년 5월6일자 지면 보도. /경인일보DB
1996년 5월6일자 지면 보도. /경인일보DB

1996년 5월6일자 경인일보는 부천시 세무비리 사건이 불거지던 가운데, 이 사건의 태풍의 눈이 될 중요한 단서를 보도했다. 부천 지역유지들이 세무공무원을 매수해 억대에 이르는 거액의 지방세를 내지 않은 사실을 보도한 것. 특히 지역 시의원들까지 연루돼 조직적으로 지역유지들의 지방세를 탈루토록 지시한 것까지 드러나 파문이 커졌다.

그간 풍문으로만 무성했던 사건이 취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진 사례다. 이 보도 이후 시민들의 분노와 의심이 커지자 부천시는 문제가 된 지역 뿐 아니라 시 전반에 걸친 지방세 자체감사를 결정했고, 연루된 지역유지들과 공무원 등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제는 때마다 한번쯤 ‘수해골프’라 제목붙인 기사들을 봤겠지만, 이 말의 시초가 되는 보도는 경인일보에서 시작됐다.

지역 토착세력·교육계·경제·정치권…

시민 눈 피해 벌어지는 부정부패 취재

 

‘1996년 부천 세무비리’ 주요 단서 보도

시의원 연루된 지방세 탈루에 일파만파

2006년 여름, 10일 이상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온 나라가 비상이던 때. 그해의 비피해는 유독 강원도에 집중됐다. 인제와 평창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하면서 산사태, 계곡·하천 범람 등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잇따랐고 도로 등 기반시설이 무너지며 피해가 극심했다. 특히 실종자를 찾기 위해 인근 군부대가 동원돼 수색에 나서는 등 전국민이 강원도 수해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 가운데, 당시 한나라당 경기도당 고위관계자들이 골프라운딩을 즐기고 있는 사진이 경인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20일 오후 5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골프클럽. 전국에 집중호우가 강타해 나라 전체가 전시에 준하는 비상체제 속에서 수해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경기도당 고위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1박2일 골프라운딩을 즐긴 사실이 경인일보 취재진에 의해 밝혀졌다.

막대한 인명피해와 엄청난 국토훼손 사태에서 수해복구에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이 중앙당의 골프 금지령도 아랑곳 않고 망중한(忙中閑)을 보낸 것이다.”(2006년 7월21일자 보도)

한나라 도당간부들 '몰래 골프'

한나라 도당간부들 '몰래 골프'

20일 오후 5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골프클럽.전국에 집중호우가 강타해 나라 전체가 전시에 준하는 비상체제 속에서 수해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경기도당 고위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1박2일 골프 라운딩을 즐긴 사실이 경인일보 취재진에 의해 밝
https://www.kyeongin.com/article/294225
2006년 7월21일자 지면 보도. /경인일보DB
2006년 7월21일자 지면 보도. /경인일보DB

‘2006년 수해 상황서 골프 친 정치인들’

현장 상황 생생히 전달… 전국민 분노

 

‘2012년 인천 남구, OCI 1천억대 감세’

허술한 세법 드러나… 2014년 법 개정

더구나 당시 해당 골프장에 잠입해 정치인들이 수해골프를 즐기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파문이 커졌다.

수해피해 현장을 찾아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해도 모자랄 판국에, 골프를 즐긴 장소가 그 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심한 강원도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국민이 분노에 들끓었다.

보도 직후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즉각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참담함을 느낀다”며 “변명할 여지가 없다. 당 대표로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골프에 참가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당 윤리위원회를 구성, 징계 절차에 돌입했고 홍문종 당시 경기도당 위원장을 제명하고 골프에 참여한 당직자들도 당원권 정지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때의 ‘수해골프’로 정치권에는 자연재해,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정에 집중하지 않고, 몸조심 하지 않은 정치인들의 안일함에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고, 정치권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이날의 수해골프를 반면교사하는 풍토가 생겼다.

‘1천700억원대 세금소송전’

사상 최대 지방세 소송전이 펼쳐진 근원지는 다름아닌 인천이다. 2012년 경인일보가 인천 남구청이 OCI(옛 동양제철화학)에 1천억대 감세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다. OCI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주)DCRE에 OCI 인천공장 소재 토지와 건물 소유권을 넘겼는데, 이를 남구청이 적정한 기업 분할로 인정, 취득세와 등록세를 감면했다. 하지만 인천시가 남구청을 감사하던 중 해당 감면 결정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렸고 지방세를 다시 추징하기로 결정했다.

“적법한 요건에 맞게 기업분할이 이뤄진 것이니, 감면이 맞다”는 입장과 “세금감면을 받기 위해선 자산 뿐 아니라 부채까지 포괄적으로 승계해야 하는데, 폐석회 처리비용 등 부채는 넘겨받지 않았으니 감면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며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1천억대 세금 깎아주는데 고작 3일’. 세금 감면을 받는 과정이 면밀하게 보도되면서 지역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이 잇따랐다. 인천지역에서 일어났지만 역대급 규모의 지방세 추징 사건이면서 기업분할의 꼼수 등에 지탄의 목소리가 큰 만큼 전국적 관심과 함께 대형로펌과 세무회계법인, 기업들의 관심도 집중됐다.

이른바 ‘1천700억 세금전쟁’은 2018년 대법원까지 진행되며 인천시 패소로 종결됐지만, 조세정의를 둘러싼 묵직한 돌을 우리사회에 던졌다.

OCI 세금소송은 기업이 자회사를 설립해 자산(부동산)을 떼어주면서 ‘물적 분할’을 빌미로 지방세를 감면받은 것이 정당한지 다투는 싸움이었다.

일반적인 부동산 거래였다면 땅을 받는 쪽은 취득세를 내야 하는데 남구는 이를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포괄적 승계’라고 보고 지방세 500억원을 감면했다.

수년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세법의 허술함이 드러났고 2014년 관련 조항이 개정됐다.

‘포괄적 승계’라는 모호한 기업분할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분할하는 사업부문에서 토지·건물이 80% 이상일 경우는 과세를 하도록 했고, 80% 이상의 고용승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기업분할을 빌미로 토지와 건물을 자회사에 넘기면서 정작 주요 사업과 직원은 승계하지 않은 꼼수 분할을 원천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만약 OCI와 DCRE의 분할이 현재 개정된 법을 적용받았다면 과세대상이 된다.” (2018년 7월8일자 보도)

[인천시-OCI 소송이 남긴것은?]주요사업·직원 승계 뺀 '꼼수분할' 차단

[인천시-OCI 소송이 남긴것은?]주요사업·직원 승계 뺀 '꼼수분할' 차단

재판 과정 세법 허술함 드러나모호한 요건 구체적 명시 '개정'폐석회처리 '자본적 지출' 판결누락될뻔한 1천억원 세원 발굴인천시가 OCI(옛 동양제철화학)와 자회사 DCRE를 상대로 벌인 수천억 원대 세금 소송을 통해 기업의 &apos
https://www.kyeongin.com/article/1283286

※기사 싣는 순서

① 촛불시위 시초 효순·미선이 그리고 미군

② 수도권 왓치독, 경인일보

③ 새벽에 홀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④ 벼랑 끝 자영업자 죽음의 진실

⑤ 사회의 가장 작은 목소리를 듣다

⑥ 경인일보가 30년 전 보낸 경고

⑦ ‘좌표 찍기’ 공무원 사망사건

⑧ 경기도 도시개발의 민낯

⑨ 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나

⑩ 학대와 방임 속에 떠난 아이들

오산/공지영·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