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춘원연구학회의 답사

옛 동아일보·이광수 별장 등 걸음

아쉽게도 내부 관람은 못했지만

천경자 화가 회고전 ‘망외 소득’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춘원연구학회 답사는 9월에 있어야 할 것을 한 달 이상 미루어졌다. 다시 무산되지 않도록 답사코스를 정비하고 대학원생들에게도 일찍부터 참여를 부탁했다. 무엇보다 우등버스를 빌려 답사가 덜 피로하도록 했다.

연로하신 선생님들까지 스물여섯 사람가량 5호선 광화문역 앞에 모였다. 공사 중인지 출입구는 막혀 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시국을 성토하는 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럭저럭 다 모이자 곧 향한 곳은 바로 앞 옛 ‘동아일보’ 사옥. 늘 지나치기만 하던 곳이다. 일요일이어선지 일민미술관은 문을 닫았고 신문박물관 쪽만을 돌아본다. ‘황성신문’이 타블로이드 판보다도 작았던 것, 1959년 4월30일에 ‘경향신문’이 폐간 명령을 받았던 것이 새롭다.

“진정한 다수라는 것이 선거로만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진정 다수 결정에 무능력할 때는 결론으로는 또 한 가지 폭력에 의한 진정 다수 결정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을 가리켜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 날카롭고 무서운 말이다. 찾아보니, 그해 2월4일자에 실렸던 이 ‘여적’이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내려와서는 몇 발짝 되지도 않는 경복궁을 향해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 버스는 경복궁 앞을 지나쳐 이리저리 영추문 앞을 지나쳐 다시 광화문 해태 앞을 지나 동십자각 앞에서 좌회전, 그러고도 유턴을 해서야 민속박물관 쪽 출입문 앞에 다다른다.

아하, 경복궁 근정전이 11월 맑고 파란 하늘 아래 숭고한 자태를 위엄스럽게 나타낸다. 비록 비운으로 끝난 왕조였으나 기상이 드높았음을 새삼 생각한다. 전각들을 돌아가니, 이번에는, 사진첩에서나 자주 보던 정려(精麗)한 형상의 경회루다. 우리 일행 중에는 인도 학생도, 스리랑카 학생도, 중국 학생들도, 카자흐스탄 학생도 있다. 모두 연못 앞에서 사진들을 찍는다. 표정들이 밝다.

점심은 춘원 별장 바로 아래 ‘팔선생’, 특이한 이름의 프랜차이즈 점에서 하기로 했다. 별장은 자하문 터널 지나 홍지문 근처에 있다. 무슨 객잔 같은 분위기의 식당에서 두 곳에 나누어 식사를 한다. 정원의 새끼 고양이들 한가롭게 볕 쬐는 구경을 한 후 바로 가파른 언덕길 위 별장으로 향한다.

아쉽게도 별장 내부는 살펴볼 수 없다. 학생들, 처음 오신 분들께 위치를 알려준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 무렵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던 이광수는 이곳에 별장을 짓고 1934년경부터 1939년경까지 불교 행자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결말은 밝지 못했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스승으로 섬기던 도산 안창호가 세상을 떠나고 그 자신마저 투옥되었다 병보석으로 풀려나온다. 그는 ‘세속행’을 선택한다. 소설 ‘육장기’(1939.9)에서 비롯된 ‘세속행’이란 결국 대일협력에의 길. 자신의 일생에 깊은 ‘얼룩’을 남기고 두고두고 해석을 둘러싼 논란을 남겼다.

삶은 쉽지 않지만, 또 너무나 짧다. 언제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는 것도, 그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늘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자취가 남아 있는 석파정(石坡亭)이다. 서미술관과 함께 돌아보아야 하는 이곳에서 자하문 밖에 가득히 찾아온 가을을 만끽한다. 단풍도 교외의 ‘단풍’은 이렇듯이 깨끗하다.

그러나, ‘화룡점정(畵龍點睛)’, 이날의 망외의 소득은 천경자 화가의 회고전이다. 천경자, 전라남도 고흥 사람으로 참으로 이채로운 신비스러운 그림과 어느 문인들보다도 뛰어난 산문의 소유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십 년이나 되었다 한다. 세월은 과연 화살처럼 빠르다.

나는 그의 ‘신기(神氣)’ 어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그의 말년의 모습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예술가란 저런 모습이라 생각한다. 시국도, 정치도 모두 예술가를 비껴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예술이어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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