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이재용·정의선 회장 치맥 회동 후

“韓에 GPU 26만장 우선 공급”… 정부 반색

AI산업 진척, 소수 축복으로 귀결되면 안돼

윤인수 주필
윤인수 주필

지난달 30일 경주 APEC 참석차 방한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한국 1, 3위 대기업 총수인 이재용 삼성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치맥 회동을 가졌다. 주가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억 달러, 수조 원의 재산이 없어졌다 생겼다 하니 재산을 가늠키 어려운 천상계 사람들이다. 글로벌 갑부들의 치킨집 강림을 언론이 대서특필했고 대중은 갑부들의 낭만에 환호했다.

다음 날 젠슨 황은 “한국에 AI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 기염을 토했고, 엔비디아는 블랙웰 GPU 26만 장을 한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블랙웰 GPU는 정부가 2030년까지 5만 장 확보를 목표로 했던 AI산업의 희토류다. 정부는 반색했고, 대통령은 며칠 뒤 새해예산안 시정연설에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전환’을 선포하고, AI 고속도로 착공 예산 10조원 편성을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들은 26만 장의 GPU로 AI생태계를 구축할 희망에 부풀어있다. 정부의 구상대로면 자동차, 제조, 반도체, 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가 AI를 기반으로 재설계된다. 대통령 말대로 위기이자 기회인 생면 부지의 산업생태계다.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산업생태계는 이미 시작됐다. 기업들은 단순 업무뿐 아니라 기획·분석 등 인간의 사고(思考) 업무까지 AI에게 맡기고 있다. 로봇들은 섬세한 인간적 노동마저 가능한 경지로 급속히 진화 중이다.

미국 빅테크 아마존이 최근에 직원 1만4천명에게 해고 이메일을 발송했다. 전체 직원 150만 명 중 약 50만 명을 AI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한다는 공식 발표 이후 첫 해고이자 대량 해고의 신호탄이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최대 순이익을 해마다 갱신하는 5대 시중은행은 몇 년째 해마다 2천여 명을 퇴직시키고 그보다 적은 신규 고용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 회계 같은 전문 분야부터 조립 같은 생산 분야에서 수많은 직종들이 사망 선고를 받아 놓은 상태다. 10년 혹은 한 세대 후 젠슨 황의 26만 장 GPU로 건설한 AI고속도로 끝에서 만날 AI 산업생태계가 모두에게 축복인 세상을 만들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AI 산업혁명이 소수 축복과 다수의 재앙으로 귀결되면 최악이다. 가보지 않은 미래지만 현재의 조짐은 불온하다. 인간의 본능과 직관은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AI 산업혁명을 위기로 직감한 사회적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돌출한다. 일자리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정년 연장이다. 노조는 연장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노동 제도와 시장에 안착한 40~50대의 일자리 연장 요구다. 청년층(15~29세)의 일자리 대기 행렬은 더 길어진다.

기득권층은 기득권의 유지뿐 아니라 개선에도 열심인 법이다. 양대 노조는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새 정부에서 관철했다. 기업의 엄살보다 자영업과 소상공업 노동자들의 두려움이 더 크다. 0.5일의 시장 축소를 치명적으로 여긴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2.5일 여가를 위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일 무제한 노동에 내몰릴 수 있다고 반발한다. ‘월화수목토일일’과 ‘월화수목금금금’의 대립이다.

밥그릇은 빼앗고 빼앗길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새벽 배송 금지에 쿠팡 노조가 결사 반대를 외친다. 밥그릇 앞에서 ‘노조는 언제나 옳다’던 강력하고 오래된 연대에 금이 갔다. 밥그릇을 깨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선의가 쿠팡 노조에겐 모욕이고 위협이다. 고임금 노조와 저임금 노조 갈등과 결별의 서막일 수 있다.

일자리의 양적 부족과 질적 격차가 초래한 의미심장한 장면들이다. 저성장 경제와 AI 산업혁명의 진척으로 더 자주 마주할 수 있다. AI 산업혁명이 ‘돼지들만의 특별한 평등’을 구현하는 쪽으로 전개되면 AI고속도로 종착지에 이르기 전에 밥그릇 전쟁으로 공동체가 침몰할 수 있다. AI시대가 인간의 노동과 사회의 연대에 미칠 영향을 숙고하고 대비할 정치인들의 철학적 사유가 절실해졌다. 그래서 더 무섭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