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제사 중심 ‘전통 제례’ 급변
초저출산·첨단 IT 시대 등 영향
현실 따라 장례·제례도 바꿔가야
각자 입장에 맞춰 ‘家家禮’ 제언
매년 음력 7월 중순쯤부터 전국 방방곡곡에 예초기 소리가 진동한다. 누구 손으로 하든 조상 산소의 벌초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연중행사였다. 전형적인 농경사회의 유산인 산소는 예법대로 쓰고, 가꾸며(喪禮), 때맞춰 제를 올리는 제례(祭禮)의 중심이었다.
지난 음력 윤달, 개장(改葬, 요즘은 파묘라는 말이 더 익숙할 듯) 유골이 몰려 전국 화장장이 몸살을 앓았다는 소식이다. 미풍양속이라 여겨 정성껏 제물을 차리고 예를 올리던 산소가 대거 사라져 가는 중이다. 그 자리를 외국에서 도입한 납골당, 수목장이 차지했고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산분장(散骨)도 주목받고 있다.
이 격변 뒤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고 강조했던 ‘가족계획’의 후과(後果)가 있다. 초저출산으로 묘지 등을 책임질 후손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초고령사회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는 늙어 힘을 잃어간다. 농경사회에서 출발, 도시산업사회를 지나 첨단 IT 시대의 AI라는 태풍 앞에 상제례의 변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전통 의례라면 총대 메고 나서던 성균관도, 유림도, 학계도 외면하고 있으며 정부의 관심은 오직 장사시설 문제뿐인 듯하다.
전국 화장률은 계속 올라 다사(多死)현상까지 겹쳐 화장 수가 급증하고 있다. 화장장 대란은 몇십 년이 가도 해결이 어렵다는 암울한 예측도 나왔다. 국민은 ‘n일 장(日葬)’이라는 의미 없는 장기(葬期)에 속박되어 힘들어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제사를 감축 폐지하였다고 들린다. 그나마 남은 제례에는 홍동백서 등등 출처 불명의 예법(상차림)이 판을 친다. 업체에 주문한 제상 차림에 고인은 어디에도 없다. 그 제사(祭需)음식은 버려지는 게 태반이고 일부는 수목장 나무 아래까지 흩어지고 있다. 화장을 장려하고 뒷받침하기 위하여 납골시설, 자연장지, 수목장림 등을 차례로 도입하고 이젠 산분장(散粉葬)도 제도화했다. 이 장법들은 아직 온전한 우리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두루 생각해 보면 이젠 우리 스스로 상제례 패러다임을 바꿔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바탕이던 장법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었으니 의례 변화는 당연해 보인다. 먼저 3일 장, 5일 장 같은 말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게 좋겠다. 이건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관제 의례 흔적이다. 현실적으로 이미 빈소를 여는 기간으로 계산하는 ‘n일 장’이 예사이다. 현명한 국민은 ‘화장장 대란’을 피해서 먼저 화장 시설 예약&납골당 계약 등 준비를 해놓고, 빈소를 열고, 상례를 시작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선(先)화장 후(後)장례’를 치른 국민도 있었다. 남의 이목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의 여건에 따라 장례를 치르면 되는 것이다. 고전적인 택일(擇日) 장례도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
우리 상제례 상차림은 지방과 가문에 따라 종류도 가짓수도 다르다. 하지만 대체로 고인의 생전 기호와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은 비슷하다. 예법대로(?) 생전 술을 멀리하던 고인에게까지 술을 권하는 게 보통이다. 국민 장례에서 납골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이르고 자연장 비중도 높아간다. 미국식 납골당, 유럽식 자연장지에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내다 보니 적잖은 무리가 따른다. 제물 진설, 설 추석 같은 명절에 맞춰 큰 상을 놓고 차례를 지내는 것, 기제사 풍습 등 모두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수목장림도 다수가 선호한다. 그런데 나무를 봉분이나 묘비처럼 여기고 제를 지내는 게 예사다. 수목 앞에 제물 차리고 절할 자리를 만드느라 숲을 망치고 있다. 여기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쓰이게 될 줄 몰랐다.
의례는 일정한 격식이 따른다. 지난날 정부는 ‘표준’이라는 명분으로 전 국민에게 획일적인 의례를 권장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의례는 각자의 입장이나 생각에 따라 ‘가가례’(家家禮)로 치르면 어떨까? 사회민속학에서 말하는 상제례의 기본 정신, ‘추모’(追慕), ‘위무’(慰撫), ‘화합’(和合)만 가슴에 새기면 된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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