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나라의 고립주의로 현대 中 후진국 전락
미국 ‘新 고립주의’ 물가 상승 부정적 영향
시장 이기는 정부 없어… 강자 경제학 비판
‘해금(海禁)’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을 줄인 말로 ‘바다에서 오랑캐와 소통하는 것을 금한다’는 뜻이다.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 건국 3년만인 1371년에 반포한 사무역(私貿易) 금지령으로 청나라 초기까지 계속된 고립주의 정책이다. 왜구의 중국 해안지대 노략질 방지와 밀무역으로 인한 조세수입 감소, 변방의 반란세력 억제, 중앙집권제 강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해금 이후 부정기적인 조공무역(국가독점무역)만 허용했으나 역효과였다. 갈수록 밀무역이 성행하고 해적들의 노략질이 심해지면서 연안지역이 더 망가진 것이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를 맞아 유럽인들은 집요하게 통상을 요청했으나 청조(淸朝)는 해금으로 일관, 아편전쟁을 계기로 1912년 청나라 멸망과 함께 중국은 역사상 최초로 서양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중국이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도 고립주의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미국의 신(新)고립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중국 수입품에 380억달러의 관세를 부과했고, 2024년 5월 18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2022년에는 52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켜 핵심 산업의 자국 내 생산을 강화했다.
그러나 미국은 대외교역을 축소해도 감당할만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식량자급률이 150%인데다 세계 민간소비의 31.5%를 차지하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추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유 생산량은 금상첨화이다. 미국 기업들의 구조도 이러한 변화에 유리하다. 미국의 글로벌기업들은 세계 고용의 68.3%, 생산의 76%, 자본 투자의 81%, R&D 지출의 86%를 자국 내에서 수행한다. ‘미국 우선주의’가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관세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9천184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최대의 적자(2천954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유럽연합(2천356억달러), 멕시코(1천718억달러), 베트남(1천235억달러)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작년 대미흑자는 660억달러로 일본(685억달러)에 이어 9번째 랭크되었다. 트럼프는 “적국보다 동맹국들이 미국을 더 뜯어 먹었다”며 흑자국들에 관세 폭탄으로 압박하는 한편 생산기지의 미국 이전을 강요하고 있다.
덕분에 미국의 관세수입이 격증했다. 미 연방정부가 2025 회계연도(2024년 10월1일~2025년 9월30일)에 총 1천950억달러의 관세를 징수, 전년 대비 무려 2.5배 증가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올 4월5일부터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10%의 보편관세를, 8월7일부터는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해 현재까지 총 890억달러의 관세수입을 올렸다. 이런 추세라면 트럼프 임기 4년 동안 미국 무역적자 1조2천억달러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로 거두어들인 막대한 재원으로 나랏빚을 변제하고 나머지는 취약부문에 배분해 ‘다시 위대한 미국’(?)을 건설할 계획이나 예단은 금물이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TSMC 미국 애리조나 법인은 지난 4년간 1조7천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했다. 타이완보다 인건비가 훨씬 높은 데다 설비비용도 두 배 가까이 비싸 차라리 고율 관세를 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앞세운 ‘트럼프 관세’는 미국 내의 물가를 끌어올리며 소비자 부담 제고는 물론 투자와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었다. 미국의 무역적자나 제조업 공동화는 미국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미국은 세계의 생산과 소비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자국 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다. 교역상대국에 미국의 무역적자 책임을 돌리는 처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달 말 체결된 한국의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협정은 전형적인 불공정협약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전체가 아닌 강자의 이해만 추구하는 경제정책은 나쁜 경제학이라고 매도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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