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기획전 한켠에 자리
보도 이후 소장자 박현철씨에 기념관 연락
연구·전시로 이어져 “제 자리 찾아 기뻐”
경인일보의 단독 보도(4월16일자 1면 보도 등)로 세상에 알려진 1945년 제암리 학살 희생자 추모 문건이 실물로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다. 그동안 제암리·고주리 학살 추모의 출발점은 순국기념탑 건립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전시는 해방 직후 주민 추도회가 그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해당 문건을 통해 조명한다.
12일 오전 찾은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기획전 ‘1919. 4. 15. 빛을 향한 시간들’. 유족 증언과 사진·편지·옛 신문자료 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된 전시실 한켠에 1945년 작성된 ‘제암리 학살 희생자 추모 행사’ 문건이 자리했다. 전시는 제암리·고주리 지역의 추모가 해방 직후 주민 추도회에서 이어졌다는 점을 시사했다.
해방 직후 작성된 이 문건은 1945년 10월20일 오전 10시 제암리 교회에서 열릴 희생자 추도회를 알리는 전단이다. 해방 직후 몽양(夢陽) 여운형(1886~1947)이 주도한 좌우합작 임시 민간통치체계인 ‘조선인민공화국’ 산하 향남면 인민위원회가 주최하고, 수원청년동맹이 후원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제의 학살을 규탄하고 희생자를 추모한 가장 이른 시기 기록으로 평가된다. 1945년 추도회-1946년 3·1독립운동기념비-1959년 순국기념탑 건립 등 개인 소장자의 서재에 있던 문건이 유관 자료들이 있는 전시실로 옮겨지면서 지역 내 추모 흐름이 마침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됐다.
앞서 지난 4월 경인일보는 해당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1919년 제암리·고주리 학살 직후 일제 치하에서는 자유로운 추모가 어려웠던 한편, 해방 후 기록은 주로 미군정 문서 위주로 남아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역 주민들이 직접 학살을 규탄하고 추모 행사를 조직한 실물 문건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지역사 연구자 등의 주목을 받았다.
소장자 박현철(63)씨는 “보도 이후 기념관에서 실물 확인 의사를 전해왔다”며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 전문 기관에서 전시·연구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제 자리를 찾아간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동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장은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추모 흐름은 순국기념탑 건립, 묘역 조성 등으로 이어졌다. 이 문건은 우리에게 기억과 전승을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자료”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된 지역 근현대사 관련 자료가 많은 만큼, 남아 있는 기록을 찾아 연결하는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이번 문건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1945년 제암리 추모 문건을 비롯해 제암리·고주리 학살과 관련한 100여 점의 자료를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22일까지 이어진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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