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구·문화재단, 느린학습자 문화예술 자립 위한 토론회
‘경계성 지능’ 정보 부족… 부평서 첫 문화예술 지원 논의
“예술로 정서·인지 성장” 죠이풀 오케스트라 사례 공유
느린IN뉴스, 감정일기·웹툰·밴드 등 자립 가능성 제시
느림은 다양성… 지역 맞춤 교육과 직업 예술가 지원 필요
인천 부평구와 부평구문화재단에서 특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소개합니다. 이른바 ‘느린학습자’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느린학습자라는 말이 생소한 독자가 많을 겁니다. 느린학습자는 표준화된 지능 검사 결과에서 지적장애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평균 범주보다 낮은 지능지수(IQ 71~84) 범위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흔히 ‘경계선 지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국내에 수백만명이 느린학습자일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정확한 실태 조사나 통계는 부족합니다. 정책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부평구·부평구문화재단이 지난 11일 부평생활문화센터 공감168 다목적홀에서 주최한 ‘인천 느린학습자 지원 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느린학습자들을 도울 방안은 무엇인지 ‘문화예술’을 주제로 논의했습니다.
황미라 부평구의회 의원이 기조 발제를 하고, 공혜진 사회적협동조합 죠이풀 이사장과 신유정 느린IN뉴스 편집장이 발제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은 나경은(한국학습장애학회장)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수의 진행으로 황달도 인천 늘해랑 느린학습자 부모회 대표와 홍세영 (사)느린학습자 시민회 이사가 발언했습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느린학습자인 연주자들이 포함된 죠이풀 오케스트라의 사전 공연이 있었습니다. 정교한 연주에 잠깐 동안 음향사고가 있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전문 연주자 못지 않게 공연을 소화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예술은 느린학습자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힘입니다.”
첫 번째 발제자인 공혜진 사회적협동조합 죠이풀 이사장은 문화예술 활동이 느린학습자의 정서·인지에 주는 긍정적 영향과 사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날 사전 공연을 한 죠이풀 오케스트라가 그 사례이기도 합니다.
공혜진 이사장은 “느린학습자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예술로 전달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으며, 예술 활동을 통해 뇌를 자극하고 집중력을 기른다”며 “함께하는 예술 경험으로 소통과 협력 등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술 교육이 느린학습자들의 성장과 자립에 필수적이라는 얘기입니다. 느린학습자들이 예술 활동을 접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도 합니다. 공혜진 이사장은 “느린학습자를 이해하는 예술교육 전문가 양성과 안정적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며 “학교, 복지기관, 예술단체가 협력하는 통합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두 번째 발제자는 국내 최초 느린학습자 전문 매체이자 플랫폼 역할을 하는 느린IN뉴스 신유정 편집장이었습니다. 느린학습자 관련 이슈는 물론 느린학습자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도록 기존 뉴스를 재구성해주고, 느린학습자들이 글이나 웹툰을 기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매체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신생 매체라고 합니다.
신유정 편집장은 청년 느린학습자들의 ‘감정 일기’ 모임을 운영해 책자를 출간하거나 그들이 직접 기획하고 그리는 웹툰 콘텐츠를 연재하고, 느린학습자 청년 밴드 활동을 지원한 경험을 설명했습니다.
신유정 편집장은 느린학습자의 문화예술 활동이 만드는 변화에 대해 앞선 공혜진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자기 이해와 정서 안정’ ‘사회 참여’ 등을 꼽았습니다. 또 신유정 편집장은 “문화예술, 창작 활동이 직업 경험으로 이어진다면 단순한 여가를 넘어 자립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신유정 편집장은 “서울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활동이 있다 보니 접근성, 기회의 불평등 문제가 있다”며 “프로그램의 단기성, 비연속성, 전문인력과 지원 체계의 부족, 경제적 보상 구조의 한계 등으로 느린학습자의 문화예술 참여 확대가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지역 내 느린학습자 맞춤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당사자 중심의 창작 환경과 직업 예술인을 위한 창작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느린학습자 직업 예술가 양성·지원 방안을 제언했습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 상당수는 인천 지역 부모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늘해랑 부모회 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느린학습자의 문화예술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건 부평구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부평구는 지난해 ‘느린학습자 평생교육 지원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황미라 의원은 이날 기조 발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느린학습자는 단지 배움의 속도가 느린 사람들일 뿐 올바른 지원을 받으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성장하고 자립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적절한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발달 지연이 심화돼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적절한 지원과 이해가 함께한다면 누구보다 따뜻하고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 활동은 이들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느린학습자들에게 도전과 희망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느림은 다양성입니다. 이날 논의를 시작점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이 느린학습자들을 포용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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