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장은 분초마다 역사가 쓰여진 숨 가쁜 외교 무대였다. 치열한 외교의 파노라마 속에서 한미 정상회담은 우리나라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사실상 승인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방위산업의 진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산업 역량, 그리고 국가 신뢰의 총합이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이다. 그 의미는 1592년 임진왜란 기간 중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거북선 정신의 현대적 부활과도 닮아 있다. 거북선은 단순한 전함이 아니라 ‘기술·창의·의지’의 집약체다. 철갑 덮개로 방어력을 높이고, 화포를 다방향으로 배치해 전방위 공격이 가능했으며, 노와 돛을 함께 사용하여 기동성을 극대화했다. 연기와 북, 깃발을 통한 체계적인 통신, 효율적인 내부 설계, 저피탐(低被探)형 선체 구조까지 거북선은 방어·공격·심리전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한 16세기형 첨단 시스템 전함이었다. 그 창의적 설계는 고려부터 이어온 조선(造船) 기술의 전통 위에서 발전했고, 기술 DNA는 오늘날 철강·조선·전자·반도체·자동차·5G 산업으로 이어졌다.
‘위기를 기술로 돌파하는 나라’ 대한민국 고유의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핵추진잠수함은 거북선 정신의 현대적 계승이자 첨단 기술 융합의 결정체다. 원자로와 추진체계·전자장비·소나·무기체계를 통합해야 하는 초복합 시스템으로, 조선·원자력·반도체·AI·배터리·소재 등 국가 주력산업의 정수가 집약된다. 과정에서 축적되는 역량은 군사 분야를 넘어 소재·에너지·로봇·AI 등 산업 전반의 혁신과 선순환적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단순한 무기 개발이 아니라 제조업의 체질을 고도화하는 국가적 기술 프로젝트로 고강도 합금, 내열소재, 정밀제어, 수중센서, 전력관리 등 부품·소재산업의 혁신을 촉진시킨다. 중소·중견기업에게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 시장이 열리고 수소에너지, 해양플랜트, 소형원전(SMR) 등 차세대 에너지 산업으로 기술이 확장되면서 국가 안보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성장엔진이 가동된다.
핵추진잠수함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설계·제조·데이터 기술은 향후 우주항공, 해양에너지, 극한환경 로봇산업으로도 확산될 것이다. 이 거대한 기술 생태계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와 산업주권을 창출하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첨단기술을 통합하고 운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수요는 폭증하고 있으며 설계·시뮬레이션·AI 운용 등 융합형 기술인재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의 건조와 운용은 일자리 창출과 기술주권 확립의 시작점이 된다. 이미 우리 조선업은 LNG선, 해양플랜트, 초대형 선박 건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역량이 방위산업과 첨단기술 분야로 확장되며 한국형 방산 클러스터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16세기 거북선이 조선(朝鮮)의 ‘국가 기술력의 상징’이었다면 오늘의 핵추진잠수함은 대한민국 산업주권과 미래경제의 상징이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해상 우위를 확보했듯, 대한민국은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운영을 통해 산업과 안보의 새로운 균형을 세워야 한다. 기술과 산업은 더 이상 경제만의 영역이 아니다. 기술은 곧 외교이고 산업은 곧 안보가 되는 시대다. 이 도전의 완성을 위해서는 창의적 사고와 실무형 역량을 갖춘 인재양성이 절실하다. 현장과 기술, 인문과 AI를 아우르는 융합형 교육이 바로 그 해답이다. 거북선이 전쟁 속에서도 독창적인 해전술을 만들어냈듯, 오늘의 대학은 산업현장과 미래기술을 연결하는 지식의 조타실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3대 인공지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방위산업과 AI 기술, 제조와 교육이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는 산학연 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교육은 단순한 학문 전달을 넘어 국가 생존전략의 핵심 축이 되어야 한다. 거북선이 과거의 상징이라면 핵추진잠수함은 미래의 거북선이다. 그 정신을 잇는 것이 곧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이며 기술과 창의로 새로운 바다를 여는 일이다.
/오형민 부천대 섬유패션비즈니스학과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