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전담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한달 70만원… 행복한 상상 빠져
아침 준비,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늘지 않는 요리실력에 나를 탓해
아주 오래전, 나는 혼자 사는 직장인이었고 출장도 잦았다. 일년에 삼분의 일쯤은 집을 비웠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연히 해외 뉴스에서 로봇 강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그만 은색 로봇 강아지는 꼬리를 살랑살랑 예쁘게도 흔들며 주인을 따라다니고, 재롱을 부렸으며, 당연히 사룟값도 들지 않았다. 출장 땐 건전지를 빼놓으면 되니까 강아지 호텔비가 들 일도 없었다. 나는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키울까? 가격이 꽤 비쌌으나 무엇보다 좋은 건 로봇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너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일본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던데, 고민에 빠진 나를 친구들이 워워, 말렸다.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 초딩이야? 무슨 로봇 강아지 타령이야?” 그런가… 싶어져서 고민도 그만두었다.
며칠 전 놀라운 뉴스를 보았다. 어느 나라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집안일을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곧 판매를 개시한다는 소식이었다. 가사 전담 휴머노이드라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설 뻔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온 소식이었던가. 100% 자율주행 자동차와 더불어 가사 전담 휴머노이드란 나의 영원한 꿈이었다. 정말 천지개벽이라도 할 셈인가, 나는 가슴이 둥둥 뛰었다. 집안일 휴머노이드는 구독제였다. 한 달 70만원. 일시불로 구매하면 3천여만원. 넷플릭스 1만4천원, 챗GPT 2만4천원에 비한다면 어마어마한 가격이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것이잖아. 70만원, 70만원… 나는 구독할 것도 아니면서 70만원이 나에게 가져다줄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이미, 혹은 에밀리쯤으로 이름을 붙인 휴머노이드가 차려둔 정갈한 밥상이 있고, 내가 아침을 먹는 사이 제이미 혹은 에밀리는 내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정리하겠지. 아침부터 아이가 엉망으로 사용한 욕실도 말끔하게 닦아놓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빨래 개기도 십오 분이면 뚝딱 해결해줄 거였다. 나는 운동화 빠는 일도 질색해서 두어 달에 한 번 집 앞 세탁소에 맡기는데, 요즘은 운동화 세탁비도 꽤 올랐다. 그걸 제이미 혹은 에밀리가 해준다면 어쩌면 월 70만원의 구독료쯤 꽤 합리적인 비용일 수도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방충망은 또 얼마나 지저분해? 그걸 일주일에 한 번씩 세제 묻힌 솔로 닦아주고, 안 그래도 로봇 청소기를 바꿀 때가 되었는데 신형으로 사려면 100만원이 훌쩍 넘는 로봇 청소기를 안 사도 되니 이건 정말이지 남는 장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는 ‘미래 그림 그리기’ 따위를 자주 시켰다. 2000년이 되면 나는 우주인과 친구가 되고, 화성으로 소풍을 가고, 자동차가 하늘을 날 줄 알아서 그런 허황한 그림을 잘도 그렸다. 집안일 하는 휴머노이드쯤이야 당연했고. 2000년이 되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0년에도 2020년에도. 나는 속은 느낌이었다.
“엄마 정말 집안일 휴머노이드를 구독할 기세인데?” 열한 살 먹은 딸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구독할 거야. 한국에 판매만 시작하면, 엄마는 얼리어답터가 되고 말 테야.” 어릴 적 그린 미래 그림 속 풍경이 2025년이 되어서야 실재하게 되었다는데 흥분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잠들겠다고 침대에 누워선 딸에게 말했다. “제이미, 나갈 때 불 좀 끄고 가.” 딸이 풉풉 웃으며 불을 꺼주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나는 “에밀리, 아침식사 다 됐어?” 물어볼 수 없어서 끄응 몸을 일으켰다. 토스트를 굽고 버섯과 호박을 볶으며 생각했다. 아, 나는 그 시절, 로봇 강아지를 포기한 뒤 진짜 살아있는 강아지를 입양했었구나. 그리고 13년 동안 하얀 털을 가진 그 녀석과 함께 살았었구나. 버섯과 호박에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려 아이는 아침부터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는 제이미 혹은 에밀리 대신 나를 나무랐다. 요리 실력은 어쩌자고 이렇게도 늘지 않을까? 집안일 휴머노이드 구독료가 70만원이 아니라 7만원이라면 정말 얼리어답터가 되어볼 생각도 있는데.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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