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SPC 계열사 SPL 평택공장

12시간 밤샘 근무, 퇴근 1시간 남은 무렵

20대 민정씨, 소스 배합기에 빨려들어가

사고 당시 흰천 덮어둔채 공장 계속 가동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미드저니AI·제미나이AI 이미지 재가공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미드저니AI·제미나이AI 이미지 재가공

55년전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법전을 손에 들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는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경제성장에 매몰된 그 시절의 비현실적 노동현실을 고발한, 처절한 절규였다. 벌써 반세기나 지났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그 절규는 여전히 노동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한국은 명실상부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나, 여전히 일하다 죽는 사람이 매일 5명꼴로 발생하는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다.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은 최상위권. 한국의 산업안전은 후진국에 머물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금만 더 안전설비에, 인력에, 안전한 시스템에 투자했다면 잃지 않았을 안타까운 죽음들. 3년 전 SPC 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청년 노동자가 숨진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매일 먹는 빵을 만들다 누군가에겐 착한 친구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였을 젊은 청년이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새벽 청년의 죽음을 처음 알리고 끝까지 잊지 않고자 노력한 것도 경인일보의 청년기자들이었다.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오후. 김민정(23·가명)씨는 SPL 평택공장으로 출근했다.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한 민정씨는 약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민정씨의 업무는 샌드위치 소스 배합. 15㎏ 소스용기를 직접 들어 소스 배합기에 넣어 섞은 뒤, 이를 다시 15㎏씩 용기에 나눠 담는 일이다. 민정씨가 일하는 공간은 15㎡(5평) 가량, 그 곳에는 소스 배합기와 민정씨 단 둘이었다. 15일 오전 6시 20분께. 밤새 중노동을 이어가던 민정씨의 오른팔이 배합기 날개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기계를 멈춰주거나, 그녀를 꺼내줄 사람이 없었다. 상체는 순식간에 기계로 빨려 들어갔고, 죽음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12시간 밤샘근무, 퇴근 1시간을 남긴 때였다. 민정씨는 영영 퇴근할 수 없게 됐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는 전조 징후들이 곳곳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민정씨의 사고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 해당 공장에서는 이미 ‘손 끼임 사고’가 일어났다.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였던 피해자는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민정씨 사고를 경인일보 기자가 단독보도할 수 있었던 것도 손 끼임 사고를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이 일하다 죽었지만,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사고 당시 다른 생산라인에 있던 직원들은 민정씨가 사망한 현장을 흰 천으로 덮어둔 채 다시 기계를 돌렸다.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회사는 그제야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지만, 민정씨 빈소엔 민정씨가 죽기 직전까지 만들었던 ‘빵’이 도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노동자의 부상을 가벼이 넘기는 지나친 ‘안일함’이 결국 민정씨의 죽음으로 이어졌는데, 안일함은 죽음 후에도 계속된 것이다.

2022년 10월 20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PL 평택공장 소스 배합기 끼임 사고로 사망한 여성 청년노동자 추모 행사에서 한 시민이 SPC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인일보DB
2022년 10월 20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PL 평택공장 소스 배합기 끼임 사고로 사망한 여성 청년노동자 추모 행사에서 한 시민이 SPC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인일보DB

일주일 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 ‘손끼임’

가볍게 넘긴 ‘안일함’이 죽음으로 이어져

회사 대국민사과 ‘안전경영 약속’ 공염불

계열사 성남 샤니공장서 또 다시 손 절단

중대재해처벌법 재판 1심서 집유·벌금형

그렇게 피로 물든 빵의 민낯은 경인일보 단독·연속 보도로 세상에 드러났다.

경인일보 보도로 민정씨의 죽음은 국내 제빵업계를 독점한 SPC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SPL 지회 등은 민정씨가 12시간 밤샘근무를 하던 그 새벽, 기계에 손을 넣었던 이유도 퇴근 전에 작업량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소스를 빨리 섞어야 했거나, 과로로 집중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손을 잘못 짚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SPC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산재사고 역시 2017년 4명에서 2022년 9월 115명까지 급증했으며 고용노동부의 기획감독에서 SPC 그룹 계열사 사업장 52개소 중 45개소에서 277건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확인됐다.

산재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SPC는 민정씨 죽음 이후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안전경영을 약속했지만, 민정씨 사망 열흘도 채 되지 않아 SPC의 또다른 계열사인 성남 샤니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기계에 손이 끼여 절단됐다. 죽어서도 바뀌지 않는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는 외침과 함께 SPC 불매운동이 촉발됐다.

민정씨의 죽음에 시민들이 함께 분노했지만, 다음해인 2023년 여름 또 빵을 만들다 사람이 죽었다. 8월 8일 낮 12시 41분께 성남 샤니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숨졌다. 올해 역시 SPC 삼립 시흥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죽었다. 새벽 3시, 빵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 도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였다. 그 역시 민정씨처럼 12시간 밤샘근무 중 사고를 당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SPC 삼립에서 일하던 60대 노동자가 숨졌는데 피해자의 죽음을 두고 6일 연속 야간근무를 마친 뒤 집에서 숨졌다며 과로사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지난달 발생한 사고를 제외하고 SPC 계열사에서 일어난 3번의 사고 중 2번의 사고는 12시간 밤샘근무 중 새벽에 일하다 사망했다. 최근 일어난 ‘런던베이글뮤지엄’ 사태 역시 장시간 노동이 문제로 지목됐다. 인천점 오픈을 준비하던 20대 노동자는 주 80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과로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물질로 지정할 만큼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장시간 노동 역시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문제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더욱이 노동현장에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등을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민정씨의 사고로 당시 SPL 대표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집행유예, 벌금형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사람이 죽어도 처벌은 가볍고 안전보다는 이익이 우선되는 후진국형 기업행태가 반복되면서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2022년 10월 20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PL 평택공장 소스 배합기 끼임 사고로 사망한 여성 청년노동자 추모 행사에서 헌화 후 묵념하는 시민들. /경인일보DB
2022년 10월 20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PL 평택공장 소스 배합기 끼임 사고로 사망한 여성 청년노동자 추모 행사에서 헌화 후 묵념하는 시민들. /경인일보DB

이재명 대통령, 8시간 초과 야근 폐지 등 발표

작업량 그대로… “기계 속도만 빨라졌다”

잇따른 중대재해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SPC 삼립 시흥공장을 찾았고 SPC는 지난 7월 8시간 초과 야근을 전면 폐지하고 2교대 비중을 20%가량 줄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대책을 발표했다. 일부 생산라인에는 4조3교대를 시범 도입하고 안전보건관리 인력을 늘리기로 했다. 또 안전설비를 확충하고 자동화 및 장비 교체 등을 위해 62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현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SPL 현장 노동자들은 오히려 근무강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야간 초과 근무는 폐지됐지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데 매일 처리해야 할 작업량은 같기 때문. 김정석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SPL 지회장은 잇따른 사망사고와 낮은 임금, 강도 높은 노동환경에 “있던 직원도 나가고 있다”며 노동자보다 기업이익을 우선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고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계에 안전센서나 안전이 기본이라는 현수막 같은건 현장 곳곳에 많이 설치됐어요. 야간 근무시간도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었고 배합기마다 2인 1조가 배치됐죠. 하지만 실제 노동 강도는 더 높아졌어요. 밤에 일하는 시간이 줄었는데 처리해야 할 작업량은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주간에 일하는 사람이 야간 작업량 일부를 당겨와서 추가로 해야합니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가거나 점심 먹을때 혼자 있으니까 기계를 껐는데, 이제는 2인 1조라서 번갈아가면서 다녀와요. 오히려 기계를 멈추는 일은 더 없죠. 회사에서는 사람을 더 뽑겠다는데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요. 사고 이후에 달라진 게 없어요. 기계 속도는 더 빨라졌고 일은 더 많아졌어요. 정말 더 힘들어졌습니다.”

※기사 싣는 순서

① 촛불시위 시초 효순·미선이 그리고 미군

② 수도권 왓치독, 경인일보

③ 새벽에 홀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④ 벼랑 끝 자영업자 죽음의 진실

⑤ 사회의 가장 작은 목소리를 듣다

⑥ 경인일보가 30년 전 보낸 경고

⑦ ‘좌표 찍기’ 공무원 사망사건

⑧ 경기도 도시개발의 민낯

⑨ 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나

⑩ 학대와 방임 속에 떠난 아이들

/신현정·공지영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