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전 젊은이 모여 학문 연구
인·의·예·지 체득, 꿈·희망 키워
고생한 수험생·가족 함께 걷기…
잘 버텨온 청춘에 위로·행운을
전국 은행나무들이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계절이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김포 통진향교 그리고 강화 교동향교 은행나무 등 곳곳에 샛노랗게 은행잎이 바뀌는 소설(小雪)이다. 그중에 으뜸은 도성 안 창덕궁 옆 성균관 명륜당 두 그루 은행나무다. 600년 전 대과를 준비하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였던 공간이다. 은행나무 옆에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보냈을까? 성균관 대성전에 공자와 그 제자들 위패가 있었다면, 명륜당에 국가를 짊어질 청춘 200여 명이 동재와 서재에서 기숙하며 공부하였다.
성균관 명륜당 유생들을 지켜본 역사 속 풍경이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두 그루다. 봄날 연두색 새순이 돋고, 여름날 짙푸른 은행잎 울창하고, 가을에 샛노랗게 바뀌는 은행나무는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들어간다. 명륜당 은행나무는 세월의 흔적이자 그 자체가 역사이자 문화이며 생태다. 강학 공간인 명륜당에 왕세자와 대군 및 왕자들도 함께 오갔다.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밤낮으로 책 읽고 토론하며 머물던 공간이 성균관 명륜당이다. 시간여행 하듯 묵직한 명륜당 현판은 500년 커다란 은행나무와 함께 성균관을 지키며 버텼다.
명륜당의 명륜(明倫)은 ‘인간 사회에 윤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600여 년 전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여 글 읽고 학문을 연구하며 지냈다. 논어·맹자·예기·춘추 그리고 주역을 명륜당 은행나무 곁에서 읽고, 동재와 서재에서 토론하고, 인·의·예·지를 체득하며 꿈과 희망을 키웠다. 지혜로운 청년들이 창덕궁 옆 명륜당에 모였다. 성균관의 성균(成均)은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성균관의 책 읽는 소리에 은행나무도 유생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성균관 명륜당 현판은 전국에서 제일 크고 웅장하다. 명륜당 월대 아래 은행나무 지나면 대성전이 보인다. 대성전은 공자와 그 제자들 그리고 우리나라 성현을 모신 사당으로 문묘(文廟)라 하였다. 봄·가을 성균관 대성전에서 문묘제례와 함께 문묘제례악도 들을 수 있어서 행운이다. 차가운 바람 속에 명륜당 은행나무를 다섯 사람이 감싸안고 위로와 격려를 전해본다. 명륜당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높이가 26m, 둘레가 12m, 수령이 500살 이상으로 추정된다. 입동 지나 소설에 샛노란 은행나무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든다.
성균관 입구에 ‘두루 원만하고 편향되지 않기를 바라는’ 영조의 탕평비와 하마비도 은행나무를 마주 보고 있다. 도성 밖 은행나무는 또 어디에 있을까? 삼각산 넘어 양주향교 은행나무와 한강 건너 광주향교 은행나무도 샛노랗게 변하고 있다. 인왕산 기슭 행촌동 권율 장군 집터 500년 된 은행나무도 손짓하듯 우뚝 서 있다. 한강 변 행주산성 은행나무 역시 누군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세월을 버텨온 은행나무가 그동안 이야기를 쏟아내듯, 차가운 바람에 황금빛 은행잎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겨울 동면을 준비하듯 노란색 은행나무는 말이 없다. 명륜당 은행나무의 황금빛 은행잎이 지기 전 고생한 수험생과 가족들이 함께 이 길을 걸으면 좋겠다. 지금껏 잘 버텨온 청춘에게 위로와 행운을 함께 보낸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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