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망하자 세상 등진 유신들, 개성 두문동·구신골 은거지로 삼아

 

‘부조현’ 비석, 마을에 재앙 이유

거북받침 버리고 돌다리로 사용

조선말기 묵객 ‘부조고개’ 詩 남겨

강화읍 남산리 부조고개 위 길가에 세워진 부조고개. 2025.11.1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읍 남산리 부조고개 위 길가에 세워진 부조고개. 2025.11.1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라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조 임금은 1740년 이곳을 지나다가 부조현과 두문동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는 그 충절에 감동하여 ‘不朝峴’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 내린 뒤 그 터에 비석을 세우도록 했다.

개성 부근의 부조현과 두문동 72인에 얽힌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 강화읍 남산리에도 똑같이 전해지고 있다. 강화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강화보건소 뒷길의 도로명이 ‘부조고갯길’이다. 부조고갯길 위쪽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도로명의 내력을 알려주는 비석이 서 있다.

‘부조현(不朝峴) 구신곡(舊臣谷)’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표지석은 2012년에 건립됐다. 비에는 고려 말 신하들이 은거지를 찾다가 강화읍 남산리 184번지 주변에 은신하여 숨어 지냈다는 내용과 ‘부조현’이라 새긴 비석도 세워져 있었고, 마을 이름을 옛 신하들이 산다는 의미로 구신골 또는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의 부조개(부조현)라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1954년 마을에 재앙이 있다는 이유로 이 비석을 뜯어다 강화읍 돌다리로 사용했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은 석수문(옛 토끼 다리) 아래에 버렸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거다.

실제로, 강화읍 남산리 남문 밖 서쪽 골짜기의 마을을 구신골이라고 한다. 구신동이라고도 하는데, 한자로는 ‘九臣洞’이라고도 쓰고 ‘舊臣洞’이라 하기도 한다. 남문 밖 남산 남쪽 기슭의 동네를 부조마을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옛 지명 ‘부조(不朝)’ 대신에 ‘부조(扶助)’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새롭게 등극하자, 고려 말 유신들은 떼를 지어 세상을 등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개성 부근의 두문동으로, 일부는 강화읍 남산리 구신골로 들어왔던 듯하다. 은신처로 두문동과 구신골을 택한 것은 개성과 강화도가 고려의 수도였기에 그랬으리라.

구신골 내력을 알려주는 표지석. 2025.11.1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구신골 내력을 알려주는 표지석. 2025.11.1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조선 말기, 강화의 옛 시인 묵객들은 강화읍 부조고개와 구신골의 고려 충신들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그중 ‘부조고개(不朝峴)’란 제목의 시 2수가 전한다. 열락제(悅樂齊) 심익지(沈益之)의 ‘부조현’은 이씨 왕조가 5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부조고개 비석을 보존하고 있다는 얘기와 구신골 인사들이 충절로 항거한 것은 하늘에 따름이라고 노래했다. 또, 우죽헌(友竹軒) 민태현(閔台鉉)의 ‘부조현’은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살면서 명예를 얻은 바를 칭송하고 있다.

강화는 예로부터 전란의 화도 많이 입었고, 그때마다 목숨을 기꺼이 버리는 충절 인물이 많았다. 강화가 충절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지명, 부조고개와 구신골 이야기를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행방이 묘연해진 강화읍 돌다리로 사용했다는 부조현 비석과 석수문 아래에 버렸다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을 찾아내는 일도 펼쳐봄 직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