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미래 달라지는 현실
학교서 배우는 건 교과서속 지식만이 아냐
가르침이 사회서도 진실이 되는 세상 꿈꿔
비가 그치면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지만 비도 비 나름이다. 산성비나 방사능에 오염된 비는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교육 현장이 겪는 최근 상황이 이 ‘나쁜 비’와 닮았다. 권력의 기준과 필요에 의해 작동한 교육 공정성 잣대가 ‘선택적 정의’라는 비아냥으로 남아, 온갖 난제로 신음하는 교육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더욱 깊게 드리웠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화두는 단연 ‘공정’이었다. 나쁜 정치적 의도를 투사시키지 않는 공정 그 자체는 참으로 중요한 가치이다. 특히 교육에서 공정성은 단순히 제도나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교육적 권위의 근간이 된다. 이것이 깨지면 모든 곳에서 불신은 깊어지고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가치를 배운다. 이는 교실만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입증될 때, 편법을 꾀하지 않고 정직한 노력을 다하게 된다.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오는 정치인 자녀들의 입시·학사·연구 특혜 논란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아는 ‘힘센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활용한다고 느끼는 순간 교육의 힘은 된서리를 맞는다.
최근 세간에 오르내리는 ‘유한나 트리오’도 여기에 해당한다. 유승민과 한동훈, 나경원 등 정치인 자녀들의 입시와 인턴십, 그리고 교수 채용 특혜 의혹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 의혹이 특정인의 도덕적 불감증이나 일탈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 카르텔이 교육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증거로 인식하면서 좌절한다. 좋은 교육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감독해야 할 유력 인사들이 오히려 그 제도의 맹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자녀에게만 유리한 ‘프리패스 찬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최근 특검과 국회에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김건희씨 전 비서관 자녀 학폭 무마 의혹이 논란의 정점에 섰다. 학교폭력은 교육현장에서 가장 예민한 영역이므로 불공정의 상징적 사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학폭위원회 관계자들의 대화 내용으로 유추하는 특권 의혹은 그 파장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경기도교육청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입장과 태도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공정의 신뢰 자본이 없으면 유기체로서의 힘을 잃는다.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밝혀내고 단죄하는 일은 누군가를 처벌하는 차원을 넘어 교육의 힘을 살려내는 일이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형벌이 비교 기준이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란과 탄핵의 비를 맞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라가 빠르게 정상화의 수순을 밟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 교육개혁 희망의 산실이었던 경기교육도 그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빛나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경기교육청이 만든 ‘AI 기반의 하이러닝’ 홍보 동영상이 지금 교육감 체제의 경기도교육청을 관통하는 관점과 철학과 정책의 기조를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교육혁신의 가치가 사라진 자리에, 선생님을 조롱하고 교육을 모독하는, AI도 인정하지 않을 AI를 마치 전지전능한 만능해결사로 그 자리에 앉히려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 교과서 속 지식만이 아니다. 잘못하면 벌을 받고 노력하면 정당한 대가를 얻는다는 상식을 배운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지는 비정한 현실을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부정한 방법으로 스펙을 쌓아도 특혜성 채용 의혹이 있어도 무사통과하는 세상을 만들면 안 된다.
교육의 공정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정의는 불의를 덮는 침묵에서 오지 않는다. 아픔이 있더라도 거짓과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교육의 공정을 세우지 않은 채 미래의 희망을 말하면 안 된다.
어린 시절 소망한 선생님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교실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이 사회에서도 진실이 되는 세상을 일구는 꿈은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 있다.
/유은혜 前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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