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열고 닫는 일, 쉽고 간단

반짝이는 것만 사랑하는 세상

여기도 금방 사라지겠지 싶어

마음에 들어도 情주기 망설여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나에게 제법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준 상실의 기억은, 스무살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까지 매주 가던 단골술집이 사라졌을 때의 일이다. 내 단골집은 지하에 있는 라이브 바였는데, 사장님이 기타연주자여서 한 잔 정도의 술값으로 라이브 공연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회사일로 늘 피곤에 찌들어 있었는데 단골술집에서 한 잔 하며 사장님이 연주해 주는 음악을 들으면 다음 한 주를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술집에 들락거리기를 몇 년째, 어느 날 들어선 술집에 더 이상 사장님이 없었다. 사장님 대신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사장님은 가게를 팔고 업종을 변경했다고 했다. 헬스장을 차렸다는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기 때문에 헬스장 개업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테리어도, 흘러나오는 음악도 같았지만 사장님이 없는 술집은 더 이상 내 단골술집이 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그 술집을 찾지 않았다.

다시 그 술집에 가지 않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사장님의 연주를 들을 수 없게 된 것,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려야 했던 배신감, 계속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누군가를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는 그리움, 음악인이 자기 길을 포기하고 헬스장을 운영하게 만든 시대에 대한 혐오 같은 것들이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단골이 없다. 가게들은 너무 빠르게 바뀐다. 마음을 두고 여기 단골 삼아볼까 싶은 순간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새 간판을 단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고 여기 단골 삼아볼까 하던 마음은 곧잘 머쓱해진다. 단골 삼겠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여기도 금방 사라지겠지 싶어 정 주기 망설인다.

동네에 꽈배기 맛집이 생겨서 한창 신나 했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했는데 제빵 실력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손님을 맞는 태도도 친절해서 길을 오갈 때마다 꽈배기를 샀다. 이 가게 덕분에 꽈배기만큼은 마음 놓고 먹겠네 싶었는데 어느날 꽈배기 집이 문을 닫았다. 폐업의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어 궁금하던 차에 지역신문에 실린 사장님 부부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애초에 우리 동네에서 장사를 오래 할 계획이 없었고, 그 자리에서 시험적으로 꽈배기 가게를 차렸다가 다른 구역으로 옮겨갈 생각이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새로 차린 빵집도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 듯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서운했다. 신문기자는 꽈배기집 사장님이 전략적으로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지만, 가게를 새로 열고 닫는 일이 너무 쉽고 간단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찜찜했다.

나는 새로운 장소보다 익숙한 장소를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보다 자주 먹는 음식이 편하다. 세련된 인테리어보다 오래 되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마음이 간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만 헌 것이 되면 부수고 갈아치우고 바꿔, 계속해서 새것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조금만 색이 바래도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수리해서 오래 쓸 수 있는 것도 새것으로 교체한다. 반짝이는 것들만 사랑하는 세상에서 매일 나이 들어 구부정해지고 늙어가는 인간은 언제나 초라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은 언제나 헌 것이니까.

겨울준비를 하려고 옷장에서 두툼한 옷들을 꺼냈다. 점퍼가 네 벌이나 있는데 다 색이 바랬다. 구멍이 나거나 헤지지는 않아서 새로 사기는 아까운데, 막상 꺼내놓으니 온통 신상품뿐인 세상에 비교되어 초라해보일 것 같다. 다들 새 옷인데 혼자 바랜 옷을 입자니 어쩐지 기가 죽는 기분이다.

‘새 점퍼를 한 벌 마련해야겠다’는 마음과 ‘멀쩡한 점퍼가 네 장이나 있는데 또 사는 건 사치고 낭비’라는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올겨울엔 이래저래 돈 나갈 일도 많은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겠다 싶다. 헌 옷은 그저 색이 바랜 옷이 아니라 나만의 ‘단골 옷’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세상은 헌 것 취급해도 나만은 꾸준히 사랑해 보겠다고 마음 먹는다.

/최정화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