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70만원에 삶 등진 청각장애인

가족에게 버림 받은 기지촌 할머니

북녘 고향 꿈에 그리는 실향민

 

그때 우리 손은 얼마나 따뜻했나

야간 순찰 중 탕비실에 있는 초코파이 하나를 먹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물류회사 보안요원 절도 사건, 이른바 ‘초코파이 재판’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회사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게 절도로 기소된 이유였고, 1심에선 절도가 인정돼 벌금 5만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 재판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여론은 ‘과도한 처벌’이라고 들끓었고, 항소심에선 종종 간식을 나눠먹었다는 동료들의 증언 등이 새롭게 나오면서 결국 무죄로 결론이 났다.

사건 자체로만 보면 직장 내 관행처럼 행해오던 문화, 직장 안에서 개인의 법적책임의 경계 등 논쟁거리 정도로 소비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의 속살을 들춰보면 절도범이 된 그는 해당 사업장 안에서 가장 힘없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였다는 점이 보인다. 회사가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배경에 ‘어떤 이유’가 존재하든 간에 그 대상이 회사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를 향했다는 건, 약자에게 그렇게 해도 별 탈이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임은 분명해보인다. 법 논리엔 맞지만 상식에선 벗어난, 이 재판을 만약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약자는 지금쯤 무정한 법 앞에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을지 모른다.

이것이 사회적 약자를 향해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자, 언론의 책무다. 어디에도 말할 데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각지대에 홀로 선 우리 사회 약자들의 이야기를 경인일보가 끊임없이 찾아내고 세상에 알린 이유다.

어느 청각장애인의 죽음

2005년 화성시 장덕동 비포장 도로변에 세워진 숨진 청각장애인 김씨의 0.5t 트럭. /경인일보DB
2005년 화성시 장덕동 비포장 도로변에 세워진 숨진 청각장애인 김씨의 0.5t 트럭. /경인일보DB

2005년 화성서 발견된 가장 쓸쓸한 죽음

궁평항 노점단속에 고발 당해 궁지 몰려

보도뒤 사회적 관심… 남은 가족에 도움

2005년 3월, 화성의 외진 비포장 도로 위. 작은 트럭에서 쓸쓸하게 죽어있는 한 남자가 발견됐다. 단순 사망으로 종결될 뻔했던 그의 죽음은 그 안에 숨겨둔 이야기가 경인일보를 통해 보도되며 파장이 커졌다.

청각장애인인 그는 같은 청각장애를 지닌 아내와 비장애인 두 딸을 키우는 가장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아내와 함께 작은 트럭으로 곳곳을 돌며 떡볶이를 팔며 열심히 살아갔다. 그런 그들에게 한해 전인 2004년 10월, 청천벽력같은 일이 발생했다.

화성시가 궁평항 어항시설 주변정리사업을 시행하며 노점행위를 불법이라 단속했고 그의 아내를 검찰에 고발했다. 재판으로 넘겨진 그들 부부에게 법원은 벌금 70만원을 납부하라고 통지했다. 한달 내내 일해도 채 100만원을 벌지 못했다. 벌금을 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고 벌금을 내지 못하자 법원은 “공판기일까지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는 피고인소환장을 발부했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그는 결국 외진 비포장 도로 위, 작은 트럭에서 발견됐다.

‘공판· 구속영장·발부’. 소환장에 적힌 법 용어가 누군가에겐 의례적인 절차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법을 잘 모르는, 어디에 물어볼 곳 하나 없는 이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이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보도한 후 당시 경인일보는 사설을 통해 그의 죽음을 통탄했다.

“(그에게) 이 사회에서 더 이상의 비상구는 없었다. 죽음밖에는.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졌다면 그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않았을지 모른다.(중략) 더불어 사는 삶이란 무조건적인 관심이다.”

보도 이후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작게나마 이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수십통의 격려편지와 성금이 모였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지만 행정당국도 생계비지원 등을 약속하며 남은 가족을 적극 돕기 위해 나섰다.

한 많은 음지인생, 기지촌 할머니들

2007년 당시 23명의 기지촌 할머니들이 모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의정부시 고산동 빼벌 마을. 고단했던 할머니들의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인일보DB
2007년 당시 23명의 기지촌 할머니들이 모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의정부시 고산동 빼벌 마을. 고단했던 할머니들의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인일보DB

미군부대 주변 남겨진 기지촌 할머니들

2007년 찾아가 생생한 삶의 상흔들 담아

“저이랑 함께 죽었으면…” 아픔의 연대

36년 식민지배로 피폐해지고 해방 이후에도 처참한 전쟁을 겪으며 대부분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국가가 묵인한 그곳 ‘기지촌’.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도 기지촌 여성들의 눈물나는 ‘달러벌이’가 한몫했고, 그녀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의사·교수·과학자 형제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부르고 등따수운 날들이 늘어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사회가 되면서, 그녀들은 서서히 음지로 숨겨야 할 ‘치부’가 됐다.

경인일보는 꾸준히 그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왔다. 지금은 대다수 언론이 한번씩은 다루는 주제가 됐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기지촌의 현실을 세상에 알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북한과 가장 맞닿은 안보적 특성상 주한미군 부대가 경기도에 가장 많았고, 이는 곧 기지촌이 경기도에 가장 많이 포진됐다는 것을 뜻하기도 해서다.

특히 2007년, 기지촌에 남겨진 할머니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도하며 사회의 조명을 받았다. 여전히 좁디 좁은 쪽방에 살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비참했던 삶의 상흔이다. 누나가 번 달러로 대학에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성공한 이후엔 누나는 더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족이 외면하거나, 또는 과거 때문에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당시 누구도 제대로 들어 준 적이 없었다.

“저이랑 한날 한시에 같이 죽었으면 좋겠어… 누가 돌봐 줄 사람도 없는데…지금까지 박복했지만 마지막으로 함께 죽는 복이 있었으면 좋겠어.”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와 함께 할머니들의 서글픈 마지막 소원을 전하면서, 그저 손가락질 하기에만 급급했던 지역사회에 기지촌 할머니들의 삶을 이해하고 아픔을 함께 위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았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인일보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자 했다. 가장 최근엔 파주 용주골 문제를 지적하며 그보다 앞선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가 국가·사회로부터 파생됐다는 근원적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고 외화벌이에 내몰린 ‘한국사 피해자’로 이들을 규정하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

2017년 취재진을 만난 황해도 순위도 출신 임경애 할머니가 두 번의 피란생활과 생선장수를 해 오며 꾸려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칠순연 가족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경인일보DB
2017년 취재진을 만난 황해도 순위도 출신 임경애 할머니가 두 번의 피란생활과 생선장수를 해 오며 꾸려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칠순연 가족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경인일보DB

한국전후 70년 훌쩍… 남한 정착한 이들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이야기, 기록 책임감

흥남부두 철수 등 피란후 삶 ‘굴곡’ 증언

한국전쟁 이후, 강산은 족히 7번은 바뀌었다. 한국전쟁이 너무 먼 과거가 돼버린 작금의 시대에 이제 실향민이라는 말을 아는 젊은 세대는 흔치 않다. 세월이 흘렀다 해서 누군가에겐 결코 잊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역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에겐 과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기도 하다.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망향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망원경을 통해 북한의 연안읍을 보고 있다. /경인일보DB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망향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망원경을 통해 북한의 연안읍을 보고 있다. /경인일보DB

2018년 경인일보 기자들은 실향민 17명을 만났다. 고향에서 행복했던 한때, 전쟁 이후 낯선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생생하다. 경인일보는 사라지고 있는 실향민 1세대의 이야기를 기록해두지 않으면 정말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이야기를 출발했다. 황해남도 해주에 살다 해방 이후 38도선 이북에 주둔한 소련군이 온동네를 헤집고 다니자 이를 피해 남쪽으로 넘어온 호성신씨, 흥남철수 당시 흥남부두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매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란온 전진성씨, 고향인 황해도 연백군을 떠나 전쟁을 피해 4번이나 피란살이를 한 이춘화씨 등 실향민들의 굴곡진 삶은 지역언론이 반드시 기록해야 할 가치있는 보도였다.

경인일보 2017년 연중기획 ‘실향민 이야기-꿈엔들 잊힐리야’ 시리즈를 수정·보완해단행본으로 엮어냈다.
경인일보 2017년 연중기획 ‘실향민 이야기-꿈엔들 잊힐리야’ 시리즈를 수정·보완해단행본으로 엮어냈다.

단순히 기자상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기록한다’는 언론 본연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책으로 출간하며 오랫동안 독자에게 기억되고자 노력했다.

※기사 싣는 순서

① 촛불시위 시초 효순·미선이 그리고 미군

② 수도권 왓치독, 경인일보

③ 새벽에 홀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④ 벼랑 끝 자영업자 죽음의 진실

⑤ 사회의 가장 작은 목소리를 듣다

⑥ 경인일보가 30년 전 보낸 경고

⑦ ‘좌표 찍기’ 공무원 사망사건

⑧ 경기도 도시개발의 민낯

⑨ 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나

⑩ 학대와 방임 속에 떠난 아이들

/공지영·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