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세계적 공감대 형성 증거
‘예악으로 나라 다스린다’ 설정
光化를 명명하던 세종의 뜻처럼
광화문 앞은 문화가 빛나는 자리
세계는 바야흐로 한국 문화 열풍으로 뜨겁다. 다름 아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때문이다. 케데헌은 지난 6월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래 영화와 드라마를 포함하여 지구촌 인류가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으로 지금도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주제가 또한 빌보드를 비롯한 각종 음악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끝날 줄 모르는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케데헌의 성공은 여러 면에서 놀랍다. 케데헌은 케이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한국에서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미국 자본과 일본 제작사가 참여한 미국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동양을 소재로 한 작품이 동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인들의 이국적 취향을 억지로 기워 맞춘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케데헌은 한국인이 보아도 한국인의 일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전통에 대한 고증이나 사실감에서 기존의 작품들을 압도한다.
물론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한국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성공으로 볼 수 없다든지 정작 한국이 케데헌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한 푼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작사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문화의 영역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한국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은 한국 문화 콘텐츠가 아닌 작품들, 이를테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공연되거나 드라마로 재탄생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들 서구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유가 해당 작품들이 가지는 보편성 때문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 한국인의 삶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제작해서 해외에 수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해외에서 제작했다는 점은 오히려 한국 문화가 바야흐로 세계인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케데헌으로 한국이 벌어들인 수입이 한 푼도 없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케데헌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세계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전에 없이 높아졌고 그로 인해 한국의 관광, 식품 등 문화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케데헌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케데헌을 보고 나서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점은 일월오봉도가 상식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까치와 호랑이가 일상적인 캐릭터로 다가오며 세계인들이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 현상이다. 예컨대 무대 배경에 일월오봉도가 나오고 가사와 리듬에 따라 폭포와 물결이 금빛으로 출렁이는 장면이라든지, 리폼한 한복을 무대 의상으로 입고 나온 주인공들이 악령과 싸울 때 한글이 흩날리는 장면은 시각적 효과를 넘어 문화적 자부심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오랫동안 근대화의 장애물로 백안시해 왔던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창조적 시각을 케데헌이 보여준 것이다.
‘춤’과 ‘노래’와 ‘음악’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킨 케데헌은 ‘예악(禮樂)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며 경복궁의 정문을 광화문(光化門)으로 명명하고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시대의 이상 국가론과 닮아있다. 광화(光化)는 ‘빛(光)으로 나라를 다스린다(化)’는 뜻이며 여기서 ‘빛’은 다름 아닌 문화의 빛이다. 세종대왕이 생각했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고 품격 있는 것이었을까. 우리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아름다운 것, 가치 있는 것을 눈 밝은 몇 사람만 알아보던 때에서 이제 모두가 알아채고 누리는 때가 시작된 것 같아 이래저래 흐뭇하다. 지금도 그러니 굳이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참전국 감사탑 같은 걸 광화문 앞 세종대왕 동상 근처에 세운다는 발상은 얼마나 생뚱맞은 것인지. 광화문 앞은 높은 문화의 힘으로 빛나는 것이 있어야 하는 자리다. 우리는 지난 겨울 그 반짝이는 빛들과 함께하지 않았던가.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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