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앞 “행정·軍 수장은 말에서 내리시오”

 

설립·공자상 봉안 시기 ‘最古’

한국전 당시 명륜당 中교실로

조선 목민관 기리는 비석군도

대성전 약수터, 위장병에 특효

교동향교 전경.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전경.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鄕校)가 인천에 있다. 교동향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29-49에 있는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처음 건립된 향교 중 하나였으며, 공자의 얼굴 그림(畵像)을 최초로 들여와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한반도 유학 전래 과정에서 무척 큰 상징성을 갖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교동향교에 공자의 화상을 안치했던 인물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1243~1306)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려사절요’의 졸기에는 “사람됨이 장중(莊重)하며… 항상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의 부흥을 자기의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기록됐다.

‘고려사절요’를 보면, 안향이 타계한 지 13년 뒤인 1319년 6월 충숙왕은 안향을 문묘(文廟·공자를 모신 사당)에 종사(從祀)하도록 명했는데, 그 명령이 있기 전 논의 과정에서 일부 대신들의 반발이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안향이 비록 국자섬학전(國子贍學錢)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인재를 양육한 공적이 있으나 어찌 이것을 가지고 종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국자섬학전’을 요샛말로 바꾸면 국비장학기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재 양성의 공적이 있다고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 함께 배향할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문묘에는 아무나 앉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임금은 안향의 위패를 문묘에 봉안토록 했다. 교동향교에는 지금도 안향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교동향교는 1127년 세워졌다. 설립 당시에는 교동 화개산 북쪽에 지었는데, 174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공자의 화상을 들여온 때는 1286년이다. 교동향교는 향교 설립 시기도 최초이며, 우리나라에 공자상을 봉안한 시점도 가장 일렀기에 국내 문묘와 향교 중에서 으뜸이라는 의미로 수묘(首廟) 또는 수향(首鄕)이라고 불린다.

교동향교 명륜당.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명륜당.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는 한국전쟁 시기 고려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실질적인 학교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교동중학교가 개교한 것은 1954년이다.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교동향교가 중학교 역할을 했다. 그 이름을 ‘명륜학교’라 했다. 미인가 중학교였던 교동향교의 명륜당과 서재, 동재 등 세 곳을 교실로 썼다고 명륜학교에 다녔던 노인들은 증언한다.

교동향교 홍살문 앞 하마비.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홍살문 앞 하마비.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입구 홍살문 앞에는 ‘하마비’가 서 있다. 교동향교의 하마비는 특별한 데가 있다. 보통은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라고 하여 벼슬이 높고 낮고 간에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써 놨는데, 교동향교에는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라 적었다. ‘수령’과 ‘변장’으로 특정해 말에서 내릴 것을 지시하고 있는데, 수령은 교동의 행정기관장을 일컫는 것으로 보이며 변장은 최전방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군 수뇌부를 가리키는 듯하다. 교동에는 조선시대에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있었다. 교동지역 군부대의 최고위층을 변장이라고 여긴 게 아닌가 싶다.

교동향교 앞 비석군.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앞 비석군.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입구에는 조선시대 삼도통어사나 도호부사 등의 교동지역 목민관들을 기리는 선정비 40기를 모아 놓은 비석군이 있다. 하마비 바로 옆이다. 교동향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말에서 내려야 했던 행정기관장 기림비가 떼를 지어 이곳에 있다는 점도 눈요깃감이다.

교동향교 대성전.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대성전.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대성전 바로 옆에는 약수터가 있다. 예로부터 위장병에 특효라고 이름난 약수인데, 대성전 밑에서 발원했다고 하여 ‘성전약수(成殿藥水)’라 한다.

교동향교 성전약수터.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교동향교 성전약수터. 2025.11.26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안향이 교동향교에 맨 처음 공자의 화상을 봉안한 것은 교동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중국에서 개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교동을 거쳐야 하는 교통로적 특성이 공자 화상을 교동향교에 처음으로 들여오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된 교동향교는 교동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 중 한 곳이다. 교동향교에는 요새도 관광버스가 일주일에 몇 대씩 오가며, 사이클 마니아들의 순례 코스로도 자리를 잡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