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 깡통전세로 새 전환기
임대인, 정보공개 의무 강화 반발
악성 임차인 선별 검증 필요 주장
상호 신뢰 구축 시스템 초점 집중
대한민국 주택 임대차 시장은 전례 없는 구조적 전환기와 신뢰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수십 년간 서민 주거 안정의 핵심축을 담당해 온 전세제도는 최근 대규모 전세 사기 사태와 깡통 전세 위험으로 인해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신뢰는 붕괴되었고, 이는 입법적 규제 강화와 이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반발이라는 극심한 갈등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임대인의 정보공개 의무 강화를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임차인 면접제도 도입 청원이 바로 그 갈등의 현주소다.
한쪽에서는 전세 사기 방지를 위해 임대인의 모든 금융·세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계약 갱신권을 최대 9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임대인의 재산권 방어와 악성 임차인 선별을 위해 임차인의 신상과 신용을 검증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세 계약은 거액의 보증금이 오가는 금융 계약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관행은 깜깜이 계약이라 불릴 만큼 임대인의 채무 건전성에 대한 정보가 차단되어 있었고, 이는 전세 사기의 구조적 원인이 되었다. 이에 정부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법적 안전장치를 강화해왔다.
2023년 4월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국세징수법의 개정은 임대인의 정보공개 의무를 대폭 강화하였다. 보증금이 1천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관할 세무서에서 임대인의 미납 국세 내역을 직접 열람할 수 있다. 또한 다가구주택의 경우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정보 제공도 의무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발의된 개정안은 임대인의 의무를 더욱 강화한다. 계약 갱신청구권을 최대 9년까지 확대하고 임대인이 변경될 때 새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하는 조항 등을 포함한다.
정부와 국회의 정책 방향이 임차인 보호와 임대인 규제로 흐르자 임대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등장한 ‘악성 임차인 방지법을 위한 임차인 면접제도 도입 청원’은 이러한 반작용의 결정체다. 청원인과 임대인들의 논리는 정보의 상호성과 위기관리다. 한 번 들이면 9년 동안 내보낼 수 없다는 위기감 속에서 계약 해지가 어렵다면 애초에 진입 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대인의 정보공개의무가 강화된 반면에 임차인에 대한 정보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장기간 차임을 연체하거나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야반도주하는 등 악성 임차인으로 인한 분쟁 사례가 빈번하다. 연락두절된 세입자의 방을 열어보니 온 집안이 쓰레기장처럼 변해 있었고 반려견의 배설물이 썩어가고 있었다는 등의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그동안 임대인은 월세 수입은커녕 수백만원에 달하는 소송비용까지 떠안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임대인은 신용점수표, 소득금액증명원, 범죄경력회보서 제출을 요구하며, 심층 면접이나 임차인 인턴제를 통해 임차인의 성향까지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임대인들은 선진국에서 이런 제도가 활성화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임차인 신용 검증 제도는 엄격한 통제하에 운영되고 있다.
미국만 보더라도 인종, 종교, 가족 형태는 물론 전과 기록에 대한 일률적인 차별이 금지되고, 신용정보를 이유로 입주를 거절할 경우 그 이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하며 임차인은 이에 반박할 기회를 가진다. 그나마 일본이 도입한 임대보증회사 제도가 합리적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는 세입자의 비용증가로 이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 법원은 임대차계약을 당사자의 개인적 신뢰를 기초로 하는 계속적 법률관계라고 판시하고 있다. 앞으로의 입법 방향은 일방적인 공개나 감시가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정보 교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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