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덕질 DNA’가 없는 나는 수많은 K-팝 팬들을 친구로 두고도 진득하게 아이돌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팬들이 얼마나 아이돌을 사랑하는지 알게 된 경험이 있는데, 바로 친구에게 응원봉을 선물해주었을 때다. 당시 ‘비스트’를 좋아했던 친구는 내가 준 응원봉을 투명 케이지에 담아 자신의 방에 가장 좋은 자리에 두었다. 누구도 그 응원봉을 꺼내 만져볼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돌의 무대를 보러 갈 때만 꺼낼 수 있는, 그야말로 친구에겐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집회에는 정말 많은 청소년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교과서와 노트, 필기구로 충분히 무거울 책가방에서 소중하게 응원봉을 꺼내들었다. 자신의 보물을 광장에 가져오는 이들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돌 개인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넘어 광장에 있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연대하겠다는 다짐은 아니었을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청소년들의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던 한 학생은 “사실 너무 무섭다”고 했다. 뉴스에서 검은 옷을 입고 방패를 든 경찰들이 시민들을 밀어내고 시민들은 처절하게 소리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을 봤었다고 했다.
응원봉을 들고 K-팝이 흘러나오는 즐거운 분위기의 집회였더라도 추위와 두려움, 막막함과 불안함까지 잊게 할 순 없다. 어찌 추위와 두려움까지 잊을 수 있을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한 나를 기억해본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많은 어른들 앞에서 공책에 한 자 한 자 적어간 자유발언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그때 경험한 광장의 힘은 나를 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청소년들이 또다시 광장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광장에서 목놓아 외치지 않아도 국민들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국회로, 정부로 향하길. 우리의 미래 세대는 기꺼이 광장에 나설 용기는 가지되, 광장으로 내몰리진 않길 바라본다.
/정선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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