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분기 끝에서 20세기 질문을 논하다

 

월러스틴 주장… 2년 만에 재진단

지속중인 극우화·전쟁·제노사이드

어떻게 인식할지 살핀 글 4편 수록

■ 황해문화 2025년 겨울호(통권 129호)┃새얼문화재단 발행. 388쪽. 9천원

새얼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계간지 ‘황해문화’ 2025년 겨울호(통권 129호) 특집 주제는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언’이다.

이번 호 권두언에선 1999년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라는 제목의 책을 낸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2019)의 질문을 서두에 배치했다. 월러스틴이 책을 낼 당시는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공고히 지속될 것 같았던 20세기 말이었다. 그러나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구조적 위기를 겪으며 무너지는 동시에, 그 세계를 뒷받침해 온 지적 구성물인 근대적 사회과학이 유효성을 상실해 가는 ‘이중적 종언’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해문화’ 편집진은 이번 호에서, 또는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월러스틴의 주장과 질문을 다시 가져왔다. 새로운 질문은 아니다. “과연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는 ‘황해문화’가 꾸준히 고민해 온 주제다. ‘황해문화’는 2년 전 120호 특집에서 현대의 시대적 상황을 ‘복합위기’를 넘어선 ‘다중재난’으로 규정하고 기후위기, 전쟁과 폭력, 디지털 자본주의와 노동, 돌봄 정치,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 등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진단한 바 있다.

120호 특집이 나온 시점에서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이번 호 권두언을 쓴 하남석 ‘황해문화’ 편집위원은 “국내적으로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던 친위 쿠데타 즉 내란과 계엄이 있었고, 국제적으로는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되면서 미국은 그간의 자유주의적 가식마저 벗어버리고 관세 포문을 열었다. 기후재난은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더 심화되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벌어진 전쟁과 제노사이드 역시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정치적 상황에서 세계는 극우화로 나아가고 있다”고 현 상황을 다시금 진단했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세계의 변동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변화 양상을 살핀 글 ▲박복영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트럼프 2.0 시대 세계 정치경제질서의 변화’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 ‘혼란과 변화로 접어든 글로벌 AI와 기후전략 - AI 리더십과 기후 리더십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쟁투’ ▲김철식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부교수 ‘디지털 자본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 ▲김선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조교수 ‘재생산 기술이 변화시키고 있는 시간, 공간 그리고 관계’ 등 4편을 실었다.

월러스틴의 ‘세계의 종언’은 붕괴가 아닌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편집진은 이번 호 특집에서 진행한 논의를 통해 불확실성 속에서도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도덕적 에너지와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복합적 위기 속에서 디스토피아를 넘어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열기 위한 지적 모색이 이번 호 전체를 관통한다.

인간 중심 세계관을 벗어나 다양한 비인간 존재와의 얽힘 속에서 삶을 재구성하는 사유를 제시해온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를 조명한 ‘사상의 오늘–여기’도 이번 호에서 주목할 만한 섹션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