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산업화 시대를 기억하는 정서적 매개다. 집집마다 여름이면 연탄을 쟁였다. 여름엔 싸고 겨울엔 비쌌던 연탄가격 때문이다. 연탄아궁이로 밥을 짓고 구들장과 보일러를 데워 겨울을 났다. 연탄재로는 골목길 빙판을 덮어 낙상을 면했다. 아무리 가난한 가정이라도 새끼줄 연탄이나마 때야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쟁여둔 연탄의 양과 가장의 근심은 반비례했다.
연탄 없는 겨울만큼이나 연탄 때는 겨울도 치명적이라, 연탄가스 사망사고는 겨울철 통과의례였다. 연탄 물가가 서민경제를 좌지우지했다. 1966년 정부가 15원이던 연탄 가격을 8원으로 묶자 업체가 공급을 줄여 난리가 났고, 1974년 오일쇼크 때는 연탄이 고갈되자 주부들이 연탄집게를 들고 정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가격 통제와 기업의 노동착취에 사북탄광 광부들이 궐기한 때가 1980년이었다.
88올림픽을 거쳐 1990년 초반에 연탄 시대가 종언을 고했지만, 해마다 겨울을 데웠던 연탄의 온기는 식지 않았다. 여전히 연탄을 사용하는 저소득 가정에 대한 연탄 나눔 봉사활동이 우리 사회의 연대를 확인하는 겨울철 통과의례로 정착한 덕분이다.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연탄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연탄 사용 가구는 5만9천695가구라 한다. 경기도 약 3천가구, 서울 1천100여가구 등 전국에 산재한 에너지 취약층이다.
올해 들어 이들에 대한 연탄 나눔 봉사에 비상이 걸렸단다. 공급량 부족으로 연탄 가격이 올라서다. 당연한 시장의 법칙이나, 이유가 애잔하다. 2014년 46개였던 연탄공장이 경영난으로 17개로 줄었다. 수도권에는 동두천 공장이 유일하고, 광주광역시는 연탄공장 폐쇄로 경상도 공장에서 연탄을 받아와야 한다. 공장이 없어져 생산량이 준 데다 유통비용이 증가하니 저소득층 연탄 지원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한술 더 떠 2028년부터 연탄 생산업체에 주던 연탄가격안정지원금 지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명맥만 유지 중인 연탄공장들엔 치명적이다. 사회연대의 지표였던 연탄 나눔 봉사의 역사도 위기에 봉착할 테다. 전체 가구의 0.1%인 연탄 사용 가구만 종언을 고한 연탄 시대에 고립될 모양이다. 산업화 시대의 역사인 연탄이 탈석탄 시대를 맞아 작별의 엘레지(悲歌)를 부르는 형국에, 지켜보는 심정이 연탄불 꺼진 아궁이 같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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