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회’는 윤석열 퇴진 이후 사회 대개혁을 위한 정책 제안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었다.(온라인공론장 ‘천만의 연결’) 이처럼 반차별과 존엄의 가치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는 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하며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전직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세대·성별·국적을 가르는 갈등을 정치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특정 지도자의 폭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경쟁과 능력중심주의 구조가 고착되면서 불평등은 일상이 됐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점점 더 주변으로 밀려났다. 차별은 익숙한 일이 됐고 시민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지난 4월 진행된 경기도민 인권 인식조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기도민 10명 중 4명은 혐오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별, 국적·인종·이주민·소수 종교, 연령, 장애인, 외모, 성적지향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이는 지역민이 빈번하게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며, 우리 사회의 평등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혐오 표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의 틈에서 차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혐오 표현이 표출된다. 미움은 타인을 향한다. 나보다 약하거나 낯선 존재,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노인, 어린이, 여성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차별과 혐오의 시선이 집중됐다.

경기도민이 경험한 혐오 표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별에 대한 혐오다. 실제로 경기도의 성평등지수는 2023년 기준 전국 하위권에 속했다. ‘여성 인권이 존중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2021년 82.8%에서 2023년 70.3%로 꾸준히 감소한 반면, ‘성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8.5%에서 17.4%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것은 누군가는 일상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적 관계 속에서 구체적이고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성차별과 불평등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는 2023년 기준 전국 이주민 중 약 32.9%가 거주해, 광역단체 중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먼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닌 우리 일상 안에서 직접 부딪치는 이웃으로 이주민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차별을 선동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이주민들이 오가는 거리에서는 혐오를 조장하는 집회까지 열리고 있다. 이러한 차별은 쉽게 대상을 옮겨간다. 캄보디아 납치 사건이 큰 사회적 이슈였을 때는 캄보디아인에 대한 혐오로, 대규모 난민이 입국했을 때는 난민들에게로, 차별과 혐오는 대상을 바꾸어 계속 재생산된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 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은 여전히 미흡하다.

오히려 지역 의회가 잘 마련된 제도들을 후퇴시키는 시도가 빈번히 발생했다. 경기도의회에서 벌어졌던 성평등 조례를 ‘양성평등’으로 바꿔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나,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 등 인권과 다양성, 평등의 가치를 담은 조례는 차별과 혐오의 공격 대상이 됐다. 많은 지역민이 차별과 혐오 표현을 경험하고 있다면 평등의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의회의 역할인데 지역민들의 기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행보였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가 일상으로 파고들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모든 시민이 존엄성을 보장받고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것은 지역민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지역 정치에서 먼저 시작돼야 한다. 시민들은 평등한 세상을 바란다. 정치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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