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기 뽑고 “잘잤다”… 헬퍼봇 이야기
반딧불이·주인 찾아 제주도로 떠난 둘
사랑 배우며 섬세해지는 로봇 이색적
‘똑똑똑’
세번의 노크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극의 시작. ‘옛날에 말이야’가 아닌, ‘미래에는 말이야’로 이어지는 사람을 돕는 헬퍼봇들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질문에 응답하듯 충전기를 뽑고 “잘잤다”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로봇이 있다.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것을 좋아하는 올리버. 그는 예정에 없던 일이 닥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집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 극 내향형으로, 주인이자 친구였던 제임스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복도 건너편에 사는 클레어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고 있다 생각하는 세상 명랑하고 밝지만 속깊은 헬퍼봇이다. 둘은 ‘파이브’와 ‘식스’라는 모델의 차이 뿐 아니라 성격도 무척이나 다른 듯 했다.
그런 둘의 첫 만남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클레어의 충전기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그녀를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던 올리버는 클레어를 도와주게 되고, 일주일간 같은 시간에 충전기를 빌리고 반납하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클레어가 좋아하는 반딧불이와 올리버가 그토록 원하던 제임스 찾기. 친해진 둘은 각자의 미션을 가지고 제주도로 함께 향한다. 이 과정에서 겪는 우여곡절은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묘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반딧불이를 찾으러 클레어와 올리버가 걸어갈 때 클레어가 떨어진 발의 부품 조각을 던지는 모습이다. 자꾸 고장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잠깐의 고민 뒤 홀가분하게 부품을 버리는 장면은 로봇이라는 갇힌 틀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걱정하기를 그만두는 클레어의 모습은 기꺼이 한 발 더 내디딜 줄 앎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결국 두 헬퍼봇은 자율적인 사랑이 가능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한계를 뛰어 넘고 온 몸의 감각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깨운다. 그들이 손을 마주 잡고 따듯하게 안을 때 통통 튀어 오르는 모습과 이를 극대화 시키는 조명은 극에 있어 중요한 장면이라고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다. 손가락 끝의 느낌, 온 몸이 퍼지는 짜릿함, 낯설지만 좋은 기분은 그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언제든 낡고 고장나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던 두 로봇이었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면 그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사랑이 찾아오면서 벅차고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복잡함이 휘몰아친다. 어쩌면 그들 앞에 세워진 힘들고 어려운 현실의 벽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사랑을 주는 일이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극은 후반부로 갈 수록 낡아가는 로봇의 몸과는 달리 마음은 더 깊고 섬세해짐을 보여준다. 점점 삐걱대고 고장나는 헬퍼봇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행복해하고, 동시에 가슴아파하는 장면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작품이 굳이 인간이 아닌 로봇의 사랑을 그리는 일은 아마도 그 단어가 주는 보편 타당하고 아름다운 공감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무대로 오며 커져버린 헬퍼봇들의 보금자리는 화려함을 좀 덜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럼에도 윌(윌 애런슨)&휴(박천휴)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방식과 그것이 주는 따듯함은 이 극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거기에 복잡한 감정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들이 극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음악 속에서 전달되는 헬퍼봇들의 마음들이 선율로, 또 가사로 부드럽게 연결되면서 이들의 처음과 끝으로 가는 여정들이 잘 전달됐다.
작품은 전부를 주지는 않는다. 끝으로 달려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결국 낡아가는 두 로봇의 사랑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지는 관객들이 느끼는 부분에 달려있다. 관객과 함께 웃고, 눈물 흘리며 10년간 사랑받아 온 헬퍼봇들. 그들은 어쩌면 해피엔딩이었을까. ‘우린 왜 사랑했을까’란 작품 속 곡이 마치 시린 겨울 하얀 눈처럼 포근하게 들려온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내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만날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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