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에 ‘그린’ 희망… 매순간 편견 깨고 ‘인생 샷’
골프가 대중화됐다고 해도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보호 없이 보육시설에서 성장한 아이가 골프선수의 꿈을 품고 프로 무대까지 오르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김연섭(38) 프로는 그 현실적 한계를 정면으로 깬 인물이다. 아직 ‘우뚝 섰다’는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그 수식어에 가까워지기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한 시즌에 홀인원 2번’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작성하며 홀인원 상금이 투어 상금을 훌쩍 넘는 이색적인 성과도 냈다. 골프 팬들에게도 깜짝 재미를 안겼다.
# 골프 접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순간
잔디밭에 그물망 간이연습 왠지 재밌어
코치생활 프로님 불릴때 인정받는 느낌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보육시설에서 시작된 제2의 인생
김 프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했다. 이후 충남 부여에서 어머니와 새 삶을 시작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었던 새 아버지는 보호자가 되지 못했고 친아버지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그는 여동생과 함께 보육시설로 들어갔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충남 최대 규모의 보육시설은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테니스와 탁구, 수영은 물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골프도 접할 수 있었다. “잔디밭에 그물망을 세워 놓고 하는 간이 연습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왠지 좋았죠.”
중학생이던 그는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7㎞를 달리는 등 체력운동을 했고 수업을 마치면 공을 치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의 열정은 주변의 눈길을 끌어 KBS ‘인간극장’, ‘제3지대’ 등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 “프로님이라고 불러주는 그 순간… 더 가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마른체형에다 체격이 작았다. 골프 체형과 거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었고 경제적 부담 역시 컸다. 하지만 그는 “골프가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다행히 고등학생이 되면서 체격이 붙기 시작했고 고2 때 세미프로에 합격했다. 당시 제도가 바뀌면서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법적 성인만 응시할 수 있게 되자 그는 그 규정 안에서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보육시설 지원은 고교 졸업과 함께 끝이 났다. 대학 진학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강원도 원주의 한 연습장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급여로 훈련을 이어갔다. “교수님이나 의사분들도 저를 ‘프로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실력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더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2010년, 24살에 KPGA 프로로 입회했다. 레슨 코치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선수로서 투어에 서고 싶었다. 오전에는 레슨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2015년 첫 투어에 데뷔했다.
# 현실 어려움 딛고 지금까지 온 동기
고2때 세미프로 후 2015년 첫 투어 데뷔
레슨으로 생계유지 아이 떠올리며 버텨
■ 냉정한 투어의 현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그러나 프로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투어 재연장에도 실패했고, 3년 동안 힘든 시기가 이어졌다. 투어 카드를 유지하는 선수는 140~150명. 20년 넘게 도전해도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치열한 세계다. 그는 아내와 경기도 광주의 작은 원룸에서 다시 시작했다. 가족은 그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적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톱10 진입에 이어 지난해에는 준우승(2024년 KPGA 투어 KB금융 리브챔피언십 2위)도 차지했다. “경제적인 게 가장 힘들었어요. 아무리 아껴도 1년에 8천만~1억원은 들어가니까요. 그래도 ‘해낼 수 있다’고 계속 말했어요. 그 생각이 버티게 했죠.”
꾸준함을 본 듯 지난해 처음으로 후원사도 생겼다. 글로벌 주차전문기업으로 국내 주차시스템 업계 1위인 ‘아마노(AMANO) 코리아’와 첨단 설루션 장비 기업 ‘솔버스(SOLVUS)’가 그의 도전을 지지했다. “후원이 생기니 자신감이 정말 커졌어요. 경기 중 위축될 때가 있는데 그게 많이 줄었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준다는 것에 실력으로 보답하고 싶었고,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해요.”
# 최근 실적과 앞으로 포부는
홀인원 2회 상금 투어 훌쩍 올 시즌 3위
이젠 우승 목표 스스로 한계짓지 마시길
■ 한 시즌 홀인원 두 번… “운도 실력도, 절실함이 만든 결과”
올해 김 프로는 시즌 중 무려 2차례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투어 공식 기록에서도 손꼽히는 사례다. 첫 홀인원은 지난 6월 백송홀딩스·아시아드CC 부산오픈이 열린 부산 기장 아시아드CC 16번 홀(파3)에서 7번 아이언으로 기록했다. 부상은 현금 5천만원이었다. 두 번째 홀인원은 지난 10월 파주 서원밸리CC에서 열린 ‘더 채리티 클래식’대회. 17번 홀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갔다. 부상은 7천500만원 상당의 벤츠. “특별한 꿈을 꾼 것도 아니고 그냥 ‘잘 맞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바람도 잘 타줬고요. 정말 운이 좋았던 한 해였죠.”
홀인원 상금만 약 1억2천만원. 투어 상금을 능가한 금액이었다. 그는 올 시즌을 종합 3위로 마쳤다.
■ “아이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현실적 한계를 딛고 오늘까지 버티게 한 동기를 묻자 그는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렸다.
“큰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요. 아이들에게 멋진 아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비시즌에는 한 달가량 휴식을 갖고 전지훈련에 들어간다. 매년 그랬지만 올해는 각오가 더 남다르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말했다.
“계속 투어를 뛰고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포기하지 않고요. 프로가 되는 게 꿈이었고, 투어에 서는 것도 꿈이었죠. 이제는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제 꿈이 하나씩 이뤄져 가고 있으니 조만간 더 좋은 소식으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한계짓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김연섭 프로는?
▲1987년 4월생
▲2010년 10월 입회
▲2015년 KPGA투어 데뷔
▲2021·22·24시즌 톱10 진입
▲2021년 KB금융 리브챔피언십 9위
▲2021년 DGB금융그룹 어바인 오픈 8위
▲2022년 제12회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9위
▲2023년 QT 2차전 우승
▲2024시즌 리랭킹 2위
▲2024 KB금융 리브챔피언십 2위
▲2025시즌 정규투어 시드 확보
※소속팀- 아마노코리아
/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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