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현지 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대 최장인 43일 연방정부 셧다운을 가까스로 종료시켰다. 상원의 민주당(47석)이 필리버스터로 봉쇄했던 예산안이 협치로 풀려난 덕분이었다. 100석의 상원 의석을 몇 석 차이로 양분하는 절묘한 균형 때문에, 공화·민주 양당이 필리버스터 종결 의석수 60석을 차지한 적이 거의 없다. 하원이 과반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켜도,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작동하면 법안 처리가 멈추는 의회 구조다. 야당의 대의 보장과 여야 협치를 강제(?)한 필리버스터로 상원의 입법권력은 막강하다.

불같은 성정의 트럼프가 참고 넘어갈리 만무했다. 여당인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불러 필리버스터를 폐지하든지, 상원 규칙을 변경해 필리버스터 종료 의석을 과반으로 조정(핵 옵션)할 것을 요구했다. 공화당은 ‘여야가 수시로 교체되는 상원에서 민주당을 견제할 수단을 포기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양당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필리버스터의 민주적 취지를 우아하게 수호한 것이다. 대신 민주당의 중도파와 무소속 의원을 설득해 임시예산안을 합의 처리해 대통령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9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 난장판으로 끝났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법개혁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본회의에 부의된 50여개 법안 전부에 필리버스터를 걸었다. 첫 주자인 나경원 의원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인사를 생략한 채 토론을 시작하면서 파행이 시작됐다. 우 의장은 나 의원의 인격을 거론했고, 나 의원은 법안 내용과 상관없는 여당의 입법독주 비판을 시작했다. 수차례 정회한 끝에 회기 종료로 중단된 필리버스터는 10일 이어진 임시회로 연장됐다.

우리 국회도 선거로 여야가 교체된다. 필리버스터는 협치를 위한 정치적 쉼표로, 여야가 공생을 위해 공유해야 할 권한이다. 취지와 기능을 알기에 필리버스터 만담과 기행도 용인됐다. 우 의장은 엄격한 의사진행으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제한하고, 여당은 국회법 개정으로 필리버스터 정당 소속 의원들을 본회의장에 벌 세우려 한다. 가진 것이 입뿐인 국민의힘이 겪는 소수 야당의 수모가 혹독하다. 언젠가 지금의 민주당과 같이 되는 날을 학수고대할 테다. 미국 상원과 달리 오늘만 사는 우리 국회 여야의 기고만장과 절치부심이 충돌한 난장판 필리버스터, 한심한데 또한 두렵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