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면에 비해 허술한 내부… 163명 숨지는 ‘크리스마스 악몽’
방화시설 부재·가연성 내장재
옥상문 잠기고 경보기 미작동
무방비 상태로 불길 확산 키워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계기
1971년 12월 25일 서울 충무로의 대연각 호텔에 화재가 나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여러 면에서 이후에 발생한 화재, 어쩌면 인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참사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당시 서울은 인구유입 현상 가속화로 인구수가 500만명을 넘기던 상황이었다. 인구수는 도시를 옆으로, 위로 확장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또 경제개발과 더불어 사회 전반이 빠르게 근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선진국의 문물도 들어왔다.
1969년 완공된 대연각은 무려 22층 높이에 엘리베이터 8대가 있던 최신식 건물이었다. 회전식 출입문에 로비가 있었고 서양식 레스토랑과 바(Bar), 나이트클럽, TV가 갖춰진 객실 등 그야말로 서울의 ‘근대’를 상징했다.
그러나 근대적 ‘외면’을 갖춘 대연각 호텔의 내부는 근대적이지 않았다. 먼저 고층 건물에서 화재의 수직·수평 확산을 막는데 필수인 ‘방화구획’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계단과 객실 사이에 방화문이 없었고 객실 문도 모두 나무였다.
실내에는 벽과 천장에 합판과 두꺼운 벽지가 있었고 심지어 바닥에는 합성섬유 소재의 카페트가 깔렸다. 합성섬유 카페트는 불에 탈 때 인체에 치명적 성분이 다량 방출된다. 지하 1층 주차장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대연각 호텔에 화재 사고가 발생한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그 전날 크리스마스 이브는 당시 야간통행금지가 적용되지 않았다. 대연각 호텔이 있던 명동거리는 서양 문화인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사고는 오전 10시경 호텔 내부 카페에서 발생했다. 화재 경보기는 작동하지 않았고, 옥상문은 잠겨 있었다. 인근 2분 거리에 소방서가 있었지만 실내 화재를 견딜 수 있는 안전장비가 부족했다. 소방차의 사다리는 7층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화재에 대한 대비가 실제로는 전무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 작은 식당이나 가정에서는 석유 풍로를 쓰는 것이 대중적이었지만, 대연각 호텔 카페에서는 그을음이 생기지 않는 신식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스레인지 사용에 있어서 아무런 제도적 제한이 없었다. 이 카페에서는 20㎏ 용량의 LPG를 실내에 두었고, 내구성이 약한 PVC(폴리염화비닐)가스 배관을 사용했다. 실내에서 누출된 가스는 산소와 혼합된 상태에 있다가 어떤 점화원에 의해 착화했다. 열에 노출된 가스통이 폭발하며 화재가 시작됐다. 위로 긴 건물 구조는 건물 내 공기흐름을 만드는 이른바 ‘굴뚝효과’를 일으켰고, 방화시설의 부재, 가연성 물질 내장재 사용은 화재의 확산 속도를 키웠다.
휴일을 즐기려던 사람들은 무방비로 이 화재를 맞닥뜨렸다. 내외국인 163명이 숨졌고 부상자는 63명에 달했다. 이 사고가 있기 25년 전 미국에서는 대연각 화재와 너무도 유사한 ‘와인코프 호텔’ 화재 사고가 있었다. 이 호텔은 당시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소방시설의 유무를 결정하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스프링클러, 방화구획 없이 지어졌다. 대연각 호텔처럼 가연성 물질로 실내가 구성됐고 119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는 이 사고를 계기로 소방법이 개정됐다.
우리나라 역시 대연각 화재 이후 스프링클러의 설치 의무 등 많은 제도적 변화가 있었다. 희생이 있어야만 바꿀 수 있었을까. 효율성과 화려한 외면, 그 내부에 인간이 없다면 공허할 뿐이다. 기술의 진보와 사회 성장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에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대연각 화재와 같은 구조의 참사는 반복된다.
/송병준 소방위 인천소방본부 영종소방서 용유119안전센터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