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의 15%가 교통
‘15분 도시’로 풍경 바뀐 파리
보행자·자전거 등 이동권 강화
자동차 중심 도시구조 바꿔야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내란적 행태에 맞서 열린 광장에서도 시민들이 가장 강조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기후위기 대응’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기후정책 논의는 여전히 에너지 전환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탄소 감축의 핵심 부문임에도 자주 주변으로 밀려나는 의제가 있다. 바로 교통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가 교통부문에서 나온다. 국내 역시 에너지부문 배출량의 약 20%가 수송부문에서 발생한다. 경기도만 보더라도 수송부문 비중이 19.3%로 건물과 산업부문 다음으로 크다. 결국 교통부문 감축은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보행자·휠체어 이용자·자전거·대중교통이 이동하기 편한 도시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나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구조와 생활방식 전체를 정치가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가 시민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갈등을 피하지 않으며, 때로는 설득과 조정의 과정을 거쳐 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해외에는 이미 변화의 사례가 있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은 ‘15분 도시’를 실현하며 도시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시민들이 학교, 병원, 문화시설, 직장을 도보·자전거·대중교통으로 1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 기능을 재배치했다. 그 결과 시민들은 굳이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삶의 템포가 느려지고, 상점은 과도한 광고를 내걸 필요가 없어졌으며, 도시의 리듬 자체가 달라졌다. 이는 단순한 도시 미학의 변화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다시 ‘주인감’을 갖게 된 변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의 변화는 단순한 공간 배치 조정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가장 요란하게 건드린 것은 교통 정책 그 자체였다. 파리는 6만개의 주차장을 없애 녹지·문화·체육시설로 전환했다. 도심 전역의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낮추고 차선을 줄여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확장했다.
이는 시민의 이동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적 신호였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동차 대신 다른 이동수단을 사용해 달라는, 행정의 명확한 메시지였다. 그 결과 자동차 통행량은 45% 감소했고 질소산화물 배출은 40% 줄었다. 보행자·자전거·장애인의 이동권은 오히려 강화됐고 도시는 더 안전하고 쾌적한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15분 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이는 환영할 만한 흐름이지만 정작 핵심인 교통 개혁은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슬세권’식 접근만으로는 기후위기도, 시민의 이동권도 해결할 수 없다. 이름만 가져오고 내용을 비워두는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자동차 중심의 도시 구조를 바꾸는 불편한 결정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기후위기는 기존 도시구조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폭우와 폭설의 양상은 달라졌고 코로나19는 사회가 단절될 때 도시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앞으로의 도시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면역력과 연결성을 갖춰야 한다. 그 연결의 핵심이 바로 교통의 공공성이다. 도시가 시민에게 기본적인 이동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어떤 기후정책도 공허해진다.
현재 경기도는 시·군마다 대중교통 접근성 격차가 매우 크다. 농산어촌 지역은 버스·철도망이 워낙 열악해 자동차 의존도가 높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조차 민간버스 중심 구조 때문에 노선 다양성과 공공성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 공공이 나서서 도시의 연결을 보장해야 한다. 교통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삶, 안전, 기후위기 대응을 관통하는 핵심 기반시설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질문은 하나다. 정치는 교통을 중심에 둔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도시와 교통을 재구성할 실질적 대책과 실행 의지를 갖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의 도시와 시민의 삶,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인신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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