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으로 빚어낸 흙빛 세상
‘도자 조각’ 개척자… 빛나는 실험정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서 도자 90여점
아프리카 시리즈 등 내년 3월 29일까지
전시실 한편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또렷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객을 노려보다가 몸을 파르르 떨고 이내 사라지는 듯 하다.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이 동물의 존재를 전시실에서 만날때만큼은 오히려 반가웠다. 동물의 정체와 특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그 분방함이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토착 신앙과 의례, 조각과 공예 등 다양한 시각문화 전통을 그려낸 신상호 작가의 ‘아프리카의 꿈-머리’라는 작품이다. 한국 도예의 지평을 넓혀온 도예가 신상호 작가의 대표연작 중 하나다.
신 작가는 흙이라는 예술 언어를 토대로 매체 실험을 거듭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국제화 물결 속에서 도예의 전통적 규범을 넘어서며 ‘도자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스 가마를 일본에서 국내로 처음 들여왔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 도예는 밥상에 오르는 도자기와 건축물 외벽을 장식하는 자재 등 생활도예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인 신 작가의 60여년 작품 세계를 조명한 ‘신상호: 무한변주’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도자 90여점과 아카이브 70여점을 선보인다.
신 작가는 “흙과 함께한 세월동안 과거에 뿌리를 두고 미래로 나아가며 항상 변화하고 반항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다”면서 “흙이라는 재료는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고 이를 활용할 아이디어도 무한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언가를 좇아가다보면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 있고 이를 해결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격이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전시는 신 작가가 1960년대 이천에서 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시실 초입에 있는 ‘아(我) 연작’은 1973년 국내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또한 1990년대 제작한 ‘분청’은 작가 특유의 호방한 회화적 표현이 돋보인다.
1995년 영국에서 접한 아프리카미술 전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파란 배경의 전시실에 이르면 금방이라도 힘차게 뛰어다닐 듯한 동물 형상의 도자들이 등장한다.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동물들의 순간을 포착한 작품은 도자 조각과 회화를 아우르고 발전시키는 방향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보여준다. 고대 생물인 고사리를 형상화한 ‘아프리카의 꿈-화석’은 색채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드러내기도한다.
건축 도자의 실험성을 보여주는 작품도 여럿 있다. 신 작가는 도자와 건축의 결합을 실험하며 도자 타일로 대형 외벽을 메우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의 ‘밀레니엄 타이드’를 시작으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금호아시아나 사옥(현 콘코디언 빌딩), 서초 삼성타운 등의 외벽에 ‘구운 그림’ 도자 타일을 설치했다. 건축의 외벽으로서 도자의 다양한 응용성을 탐색한 그의 작품은 도자의 색 표현 범주를 넓히기도 했다.
전시는 작가의 수집품과 이를 통한 창작 활동을 소개하고,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붙여 다채로운 색을 입히는 도자 회화를 조명하며 끝이 난다.
전시는 내년 3월29일까지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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