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녹 먹으니 봉사해야 한다고 여기는 公僕

악성민원 자라는 토양 됐고 벼랑 끝으로 내몰아

작년 김포 공무원 안타까운 희생 세상에 알려져

경인일보 단독·연속 보도후 대책 마련 ‘신호탄’

민원 담당자 보호 조례·제도 지원 등 과제 남아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공무원이니까’.

2000년대 후반, 고양시의 한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이 욕하며 난동을 부리다 공무원이 다쳤다. 한달 뒤에는 또다른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이 폭언을 쏟아내며 물건을 던졌다. 공익근무요원이 서류를 한손으로 줬다는 게 이유였다. 어떤 민원인은 자신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공무원 앞에서 자해를 했다. 4년 뒤인 2013년에는 성남시의 한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이 흉기를 휘둘러 공무원이 손과 얼굴 등을 다쳤고, 또다른 곳에서는 민원인이 공무원을 폭행했다. 피해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이니까’ 참고 넘겨야 한다고.

우리는 흔히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公僕)이라 표현한다. 국민의 녹을 먹고 있으니, 공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너무 당연하다 여겨서일까. 그 봉사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이러한 인식은 ‘악성민원’이 자라날 토양이 됐고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 끝에서 결국, 김포시청 9급 공무원이 떨어졌다. 그는 지역 인터넷카페에 실명과 소속부서, 직통 전화번호까지 공개된, 이른바 ‘좌표찍기’에 시달리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했다. 경인일보 단독·연속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그의 죽음과 그를 죽음으로 내몬 악성민원의 민낯은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공무원이니까’라는 인식에 돌을 던졌고, 더는 안타까운 희생을 해서는 안 된다며 대책 마련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좌표 찍기와 민원폭주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김포시 공무원의 추모공간에서 동료직원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2024.3.7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좌표 찍기와 민원폭주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김포시 공무원의 추모공간에서 동료직원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2024.3.7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지난해 2월 휴일을 앞둔 어느 추운밤, 도로 위에는 브레이크등을 붉게 밝힌 차들이 가득했다. 브레이크를 살짝 뗐다가 다시 잡으며 차들은 거북이마냥 느릿느릿 움직였다. 지난주 쏟아진 눈, 군데군데 생긴 포트홀로 차로 3개 중 2개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쏟아질대로 쏟아진 운전자들과 시민들의 민원, 작업자들의 손은 더욱 분주했다. 그럼에도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화살은 그밤 칼바람을 맞으며 도로 위에 서 있었던 김민호(37·가명)씨에게로 향했다. 그가 공격 대상인 된 이유는 단순했다. 민호씨는 김포시청 도로 긴급보수·도로 피해보상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니까. 민호씨는 아무런 방패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맞았고 3월 5일 낮 인천광역시 서구에 주차된 한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인일보는 지난해 일어난 민호씨의 죽음, 그리고 왜 그가 죽었는지를 단독·연속보도하며 세상에 알렸다.

민호씨를 괴롭힌 건 바로 악성민원, 특히 소속부서와 실명, 직통번호까지 공개하며 이른바 ‘좌표찍기’식 공격이었다. 차량 정체로 화가 난 시민들은 지역 인터넷카페에 모여 민호씨 신상을 공개하고 마구잡이로 비난했다. 온라인 특성상 분노와 비난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시청 당직실에 60여차례 전화해 욕을 퍼붓고 ‘해당 공무원은 욕먹어도 싸다, 찾아간다 전해라’고 위협을 가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김포시가 청사 앞에 마련한 추모공간에 동료 공무원들이 남긴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익명의 한 공무원은 숨진 9급 공무원 A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악성민원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근조화환을 남겼다. 2024.3.8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김포시가 청사 앞에 마련한 추모공간에 동료 공무원들이 남긴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익명의 한 공무원은 숨진 9급 공무원 A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악성민원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근조화환을 남겼다. 2024.3.8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민호씨의 죽음은 수십년간 악성민원을 참고 견뎌야만 했던 공무원들의 아픔, 흉기와도 같은 악성민원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악성민원은 민호씨처럼 좌표를 찍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무원을 붙잡고 장시간·반복적으로 전화하거나 국민신문고 반복접수, 폭탄처럼 퍼붓는 정보공개 청구, 무차별적인 감사청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중앙·지방정부에서 발생한 악성민원은 보고된 건만 7만9천여건에 달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2023년 말 소속 조합원 7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가 최근 5년 사이 악성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공무원들은 이렇게 악성민원에 매일같이 시달려도 이를 끊어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민호씨도 자신의 자택 컴퓨터에 잇따른 악성민원에 고통을 호소하는 글을 쓸뿐,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호씨가 사망하기 전인 2022년 10월에는 악성민원이 발생할 경우 기관장이 적극적으로 법적조치에 나서고 민원전담대응팀을 지정하도록 하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이 이뤄졌지만, 악성민원은 끊이질 않았다. 그 결과,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악성민원을 받아도 참고 견뎌야 하고 공무원 개인이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이는 ‘공무원 기피현상’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참아야만 했던 공무원들은 민호씨의 죽음을 계기로 대책 마련을 외쳤다. 전국 기초지자체 노동조합 100여곳이 민호씨 죽음에 근조화환을 보내며 애도했고 공무원커뮤니티에 민호씨와 유사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악성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는 인사혁신처,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청 등과 지자체가 참여하는 ‘악성민원 대응 TF’를 꾸렸고 김병수 김포시장을 비롯한 전국 지자체장들은 애도를 표하며 자체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등 악성민원 대응의지를 표명했다. 당시 지자체들은 악성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모의훈련에 나섰고 지자체 홈페이지마다 공무원 이름에서 성을 제외하고 OO 또는 **로 가리는 등 공무원 실명 비공개 역시 민호씨 죽음 이후 이뤄진 자구책이었다.

TF를 구성한 행정안전부는 민호씨가 죽고 두달여만인 5월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민원 담당 공무원은 민원인이 욕설 등을 할 경우 1차 경고 후, 자체 통화 종료를 할 수 있도록 했고 통화 시간도 제한하기로 했다. 방문 민원은 사전 예약제로 전환하고 온라인 민원창구도 업무에 지장을 준다면 시스템 이용에 제한을 둔다는 대책 등이 담겼다. 정보공개 청구를 과도하게 할 수 없도록 정보공개법 개정 등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동안 공무원들이 강조했던 기관 차원의 법적대응, 보호조치 이행을 위한 강제조항은 빠졌고 악성민원 처벌 규정도 담기지 않았다. 민호씨 죽음을 계기로 여러 대책이 마련됐지만, 공무원들은 악성민원을 근절하고 공무원을 보호할 실질적 대책은 빠졌다고 토로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김포 공무원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2024.3.1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김포 공무원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2024.3.1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은 지난 8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한 번 악성민원 방지 대책 전면 보완을 촉구하며 전공노가 전국 136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부 악성민원종합대책 실태조사’를 공개했다.

지자체 58%는 여전히 악성민원 대응 전담 인력을 두지 않았고 민원 처리 담당자 보호를 위한 조례와 방침, 자체 계획을 마련한 지자체는 38%에 불과했다. 또한 욕설을 하거나 폭언 등을 하는 민원인을 강제 퇴거하거나 통화를 강제 종료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으나, 여전히 자자체 34%는 강제 통화종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공노는 “공무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을 즉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갑질’이다. 재벌가, 프랜차이즈 업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식당이나 카페, 직장 등 일상생활에서도 갑질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민원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공무원을 괴롭히는 악성민원 역시 갑질과 다를 바 없다. 경인일보는 1999년 사설을 통해 공무원을 향한 악성민원을 꼬집으며 민원인과 공무원간 존중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직자들이 자신을 잊고 공복으로서 열심히 일한 공로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999년 5월 10일 경인일보 사설 중 일부)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 싣는 순서

① 촛불시위 시초 효순·미선이 그리고 미군

② 수도권 왓치독, 경인일보

③ 새벽에 홀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④ 벼랑 끝 자영업자 죽음의 진실

⑤ 사회의 가장 작은 목소리를 듣다

⑥ 경인일보가 30년 전 보낸 경고

⑦ ‘좌표 찍기’ 공무원 사망사건

⑧ 경기도 도시개발의 민낯

⑨ 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나

⑩ 학대와 방임 속에 떠난 아이들

/신현정·공지영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