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음에 제대로 답변 못하면

곤욕스러운 대가 치르게 만들어

위축 말고 솔직히 욕망 말해보자

건강한 권력욕이 최소 안전장치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미 정치인이거나 정치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왜 하려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자주 이 물음은 제대로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곤욕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경력이 쌓인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79년 미국 상원의원이자 케네디 가문의 막내였던 테드 케네디의 인터뷰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CBS 기자 로저 머드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가족과도 친했던 머드 기자와 가벼운 주제로 한담하는 자리로 알았던 테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했다. 결국 민주당 경선에서 지지율이 바닥이던 카터에게 패배한 그는 이후 다시는 대선에 도전하지 못한다. 훗날 회고록에서 앵커 자리를 노리던 머드의 속임수에 당했다고 원망하면서도, 정치판에서 늘 제기되는 질문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아야 ‘준비된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국가 발전을 위해. 흠잡을 데 없는 답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대부분 막연하게나마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은 하지만 10년, 20년 지나서도 초심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대의만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기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권력욕, 명예욕, 자기실현 욕구가 더 근원적 동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굳이 숨기고 부정해야 할까.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위대한 정치인들의 내면에도 이런 욕망이 깔려 있다.

테드의 형이자 결국 대통령이 됐던 존은 이에 솔직했다. 1960년 대선 출마 선언 후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정치가 다른 어떤 직업보다 보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가 되면 유산, 이혼, 사고 처리 소송 같은 일을 하지만 의원은 노동법을 만들고 외교 같은 국가 대사를 논하는데 그 이익이나 만족의 정도가 비교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데 그런 욕망이 나라를 움직인다고 했다. 대통령직은 그 정점, 세상을 바꾸는 힘의 중심이다. 존에게 정치가 직업으로서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폼났기’ 때문이었다.

이 욕망을 직시하는 일은 정치를 더 오래 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막스 베버는 정치 현실에서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지 않는다’고 했다. 선의만으로는 좌절하기 쉽다. 더군다나 자기 내면을 모르면 세상의 냉혹함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인민의 마음은 잘 읽지만 의외로 자신과 같은 지배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교황에게 속아서 몰락한 체자레 보르자가 그랬다. 역사 속 성공한 정치인은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잘 알았기에 적절한 선에서 멈출 줄 알았고, 정치판의 비열함에 맞닥뜨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되뇌며 버틸 수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처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줄 아는 정치인은 적어도 국민을 무시하고 막 나가기는 힘들다. 김대중이 후배 정치인에게 했다는 ‘정치도 인기 직업이니 염색하고 다니라’는 권유는 어떤 화려하고 거창한 말보다도 더 정확하게 정치인의 직업윤리를 함축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실제로 선한 것보다 선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문명사회에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담고 있다. 지금 정치인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 선은 절대 넘지 않겠다’는 자존심, ‘창피하게 보이기는 싫다’는 수오지심이다.

이제 누가 ‘왜 정치를 하려느냐’고 묻거든 위축되지 말고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말해보자. 베버가 말했던 정치에 대한 ‘소명’도 욕망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어질 수도 발견될 수도 없다. 건강한 권력욕과 공명심이 공인 의식은 커녕 체면이고 양심이고 다 내다버린 요즘 정치권의 추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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