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텃밭 ‘마이애미’서 대패

히스패닉·20대의 변심이 결정적

바이든 정권 실망에 막연한 기대

오판 확인후 반트럼프로 돌아서

장제우 작가
장제우 작가

취임 후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 국민이 무능한 트럼프에게 옐로카드를 꺼내기까지 말이다. 지난 9일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을 19%p의 큰 격차로 따돌리며 압승했다. 28년만의 탈환이자 마이애미 첫 여성 시장의 탄생이다. 공화당 입장에선 텃밭에서의 대패이기에 충격이 더욱 크다.

이에 앞서 11월 뉴욕 시장과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수성에 성공했고 버지니아 주지사는 탈환에 성공했다. 민주당의 아성인 뉴욕시 투표자 수가 1969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기며 선거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2026년 중간선거 시 투표 의향이 매우 높은 민주당 지지층이 44%인 반면 공화당은 26%에 그쳤다. 뉴욕시의 투표 열기와 진보 색채가 뚜렷한 34살 맘다니의 당선은 이런 심리도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2024년 대선에서 뉴저지의 경우 해리스가 트럼프를 5.9%P 앞섰다. 하지만 이번 주지사 선거에선 민주당 후보가 13%P 차이로 우위를 가져갔다. 버지니아는 더욱 극적이다. 해리스가 5.7%P 앞섰던 것이 15.2%P의 민주당 우세로 변했다. 두 자릿수 격차로 민주당이 버지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근 30년간 없었던 일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전국투표 승리라는 드문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히스패닉과 20대의 변심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트럼프 집권이 1년도 지나기 전에 ‘트럼프 아웃’을 외치고 있다.

히스패닉 유권자는 2020년 대선 대비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14%p나 더 투표하며 46%의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퓨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10월 히스패닉의 트럼프 지지율은 27%에 불과하다. 유고브의 9월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49%, 공화당이 31%를 얻어 차이가 컸다. 뉴저지와 버지니아 주지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라티노 유권자는 민주당 후보에 각각 68%와 67%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2024년 트럼프는 18~29세로부터 43%를 득표했다. 2020년보다 7%p 증가한 것이다. 남성은 트럼프와 해리스가 49%와 47%로 비등비등했고 여성은 37%와 61%로 해리스가 크게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조사나 선거에선 30세 미만 남성이 여성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조사에서 30세 미만의 트럼프 지지율은 집권 두 달째인 2월 52%를 기록했지만, 6월엔 34%로 급감했고 12월에 27%까지 떨어졌다. 이는 뉴저지와 버지니아의 출구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민주당 후보의 30세 미만 득표율은 각각 69%와 70%에 달했는데, 성별로 보면 30세 미만 여성의 경우 81%와 82%의 몰표를 던졌고 동세대 남성은 57%와 58%를 몰아주며 2024년 해리스의 청년 여성 전국 득표율에 근접했다.

로이터의 12월 조사에 따르면 경제정책을 더 잘할 정당으로 공화당이 42%를 얻으며 34%의 민주당을 제쳤고, 생활비 경감에서는 민주당이 37%, 공화당이 36%로 별 차이가 없었다. 최대 현안인 물가 및 경제 부문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경쟁력을 더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 고무적인 선거 결과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트럼프 덕분이다.

트럼프의 경제 성적표는 연일 바닥을 갱신 중이고 물가를 별도로 조사할 경우엔 더욱 좋지 않다. 심지어 경제와 인플레이션 사안에 트럼프가 충분한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답변은 무려 77%에 달한다. 적잖은 트럼프 지지자마저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한 데다 성의마저 없는 트럼프를 보는 다수 미 국민의 심정은 술독에 빠져 출근까지 속인 윤석열을 봐야 했던 한국 국민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듯싶다.

트럼프의 경제 및 물가 정책 실패는 대선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바이든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그에게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가 오판임을 확인한 이들은 빠르게 반트럼프로 돌아섰다. 그러나 유무형의 온갖 피해가 앞으로도 쌓여갈 것이다. 경제적 고충에 대한 실효적 대책이 부족할 때 엉뚱한 대안이 선택될 수 있다는 것, 윤석열을 따라가는 트럼프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장제우 작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