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만 평생 살았는데… ‘깡통 국적’ 쥔 채 쫓겨날 판

 

25년전 생계형 범죄에 이례적 명령

정주자격 없어 본국 송환 불가능

외국인보호시설 수용도 ‘한정적’

보호위서 정당 처분인지 검토중

1880년대 개항기 인천항 조계지를 중심으로 정착한 대만 국적의 구화교는 우리와 근현대사를 함께 겪었지만 현재 한국과 대만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호적 관리조차 민간단체인 화교협회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14일 오후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인천화교협회. 2025.12.1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880년대 개항기 인천항 조계지를 중심으로 정착한 대만 국적의 구화교는 우리와 근현대사를 함께 겪었지만 현재 한국과 대만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호적 관리조차 민간단체인 화교협회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14일 오후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인천화교협회. 2025.12.1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40여년 전 한국에 정착해 뿌리를 내린 대만 국적 화교가 한국 정부의 ‘강제 퇴거명령’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추방 조치가 내려진 화교는 대만 본국으로 송환될 것이란 통념과는 다르게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된다. 화교들은 국적만 대만일 뿐, 대만 정부에서 부여하는 신분증번호도, 정주 자격도 없는 ‘무호적(無戶籍) 국민’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 화교에게 이례적인 강제 퇴거명령이 내려졌다.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대만 국적 화교 3세 한홍(60)씨는 지난달 6일 법무부 안산출입국으로부터 이같은 처분을 받았다. 법무부는 “한국의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한씨에게 한국을 떠나도록 명령했다. 25년 전에 전 재산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한씨는 기물파손, 공공장소 소란, 소액 절도 등 크고 작은 범행을 저질렀다. 문제는 퇴거명령을 받은 그가 현실적으로 대만에 송환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씨처럼 대만 출신 화교들은 대만의 ‘무호적 국민’으로 본국에 거주할 자격이 없다. 국적은 대만이지만, 해외에서 태어나 대만에 호적을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호적도, 신분증번호도 없는 ‘무호적 국민’

호적이 없는 화교들은 대만 정부가 부여하는 ‘신분증번호’가 없다.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것이다. 대만 호적법은 자국 현지에 호적이 있는 자에게만 신분증번호를 발급한다. 대만에서 신분이 없는 화교들은 본국 입국 시에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대만 거주를 위해서는 ‘외국인등록증’까지 만들어야 한다. 대만 국적임에도 본국 내에서는 외국인 취급을 받는 셈이다. 이 때문에 화교들의 대만 여권은 ‘깡통 여권’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씨는 최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사는 게 힘들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 같아 많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조부모님이 한국에 정착한 후 인천에서 태어나 외국 한번 나가본 적 없는데, 대만으로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지니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불안하고 무섭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법무부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외국인보호소의 보호를 받고 있다. 출입국관리법 제63조는 외국인이 강제 퇴거명령을 받고 즉시 출국할 수 없는 경우 본국 송환 전까지 보호시설에 수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본국 송환 가능성이 없는 그가 언제까지 보호 조치를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퇴거명령이 시행되면 한씨는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한국에 5년간 입국할 수도 없다.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한씨가 추방이 된다면 난민과 유사하게 공항에서 생활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범죄도 아닌 생계형 범죄에 추방 조치가 내려진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 본국 송환 가능성 없는 보호와 퇴거명령, 정당한가

올해 9월 변호사들의 공익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인 ‘법조공익모임 나우’는 ‘외국인보호위원회 판단기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이 단체는 외국인 보호(구금)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송환 가능성’을 꼽았다. 가이드라인 집필에 참여한 법무법인 ‘공익법단체 두루’ 이상현 변호사는 “법무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보호 제도가 무국적자, 그리고 사실상 무국적자에 준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작동할 것이냐에 대한 우려는 계속 존재해 왔다”며 “송환 가능성이 없는 외국인에게 송환을 전제로 이뤄진 구금이 과연 정당한지는 더욱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외국인보호위원회’는 한씨에게 내려진 처분이 정당한지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위원회는 앞서 6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계기로 출범했다. 외국인을 무기한 보호(구금)할 수 있었던 법 조항이 사라짐에 따라 보호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한씨를 보호하고 있는 법무부 인천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보호 조치만을 집행하는 역할”이라며 “향후 조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