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전 사신 연회 베풀던 누정
강변 명당자리에 ‘제일의 정자’
양화진·공암진 등 풍경 한눈에
겨울오면 모래사장 흰 눈 ‘절경’
첫눈이 내리면 그곳을 걷고 싶었다. 한강변 양화나루에 있는 정자에서 강물에 떨어지는 눈을 보고 싶다. 600년 전 한양의 아름다운 풍경과 눈 내리는 한강을 읊은 시가 예부터 전해왔다. 한양도성과 한강변 봄·여름·가을·겨울 풍경 담아 시를 엮은 것이 한도십영(漢都十詠)이다. 그중 양화나루 황금빛 모래 위 하얀 눈을 밟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과연 이곳에 누가 왔을까? 양화나루는 한강의 3대 나루였다. 한강 상류 송파나루가 있던 삼전도, 도성 밖 한강진 그리고 한강 하류에 양화나루다.
양화나루는 서울과 제물포 사이, 양천과 김포 지나 강화를 가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한양도성의 군사 요충지로 양화진(楊花鎭)이 설치되어 국가가 관리하였다. 강 건너 안양천변 공암진과 철곶진도 함께 관할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오늘날 양화대교와 성산대교는 양천과 강화, 고양과 파주를 잇는 중요한 다리다. 또한 합정역은 한강변 환승 거점으로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양화나루가 있는 강변북로 옆에 망원정(望遠亭)이 보인다. 합정역 8번 출구에서 870m 걸으면 야트막한 동산에 정자가 우뚝 서 있다.
망원정은 600년 전 사신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누정이었다. 삼각산이 등 뒤에 있고, 한강 물길에 나룻배가 오가는 그림 같은 공간이었다. 망원정에 오르면 선유봉과 개화산도 한눈에 보인다. 차가운 겨울 강바람에도 햇살이 정자 기둥을 통해 그림처럼 들어온다. 강변북로에서 망원정 현판이 보이지만 정자에 오르면 희우정(喜雨亭) 현판이 걸려 있다. 좀 더 가까이 가보면 세종대왕 이름 이도(李裪)가 현판 속에 있다. 효령대군의 별서 누정이었으나 세종이 세자와 함께 행차한 후 정자에 머물렀을 때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고 한다.
세종이 한양도성 성저십리 한강변 양화나루 백사장에서 수군들 훈련을 참관하고, 백성들 농사도 시찰하였던 곳이다. 애민과 위민의 정신 속 가뭄에 단비가 오니 기쁜 마음에 직접 정자 이름을 희우정으로 지었다고 한다. 희우정은 효령대군이 죽고, 지은 지 60년 후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살면서 ‘망원정’으로 바뀌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산과 강을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역설적으로 담겼다. 110여 년 전 망원정이 있던 곳은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망원리였다. 서울이 점점 커지며 서대문구에서 마포구 망원동이 되었다.
양화진과 선유봉 사이 숨은 듯 보이지 않지만 한강변 명당 자리에 제일의 정자가 망원정이다. 양화진과 공암진 그리고 행호까지 드넓은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공간이다. ‘한강제일정’(漢江第一亭)으로 왕과 세자 그리고 대군이 오가던 곳이다. 낮에 망원정에 앉아 밤섬과 여의도 그리고 서강을 내려다본다. 밤이 되면 정자에 앉아 하늘과 구름과 한강에 뜬 달도 볼 수 있다. 양화진은 김포와 강화에서 조강 거슬러 마포나루까지 나룻배가 끊임없이 오가던 별천지다.
봄이면 잠두봉에 진달래와 버드나무 꽃 피고, 여름에 짙푸른 수양버들 춤추던 곳이다. 가을 지나 겨울 오면 양화나루 모래사장에 눈 쌓인 절경이 펼쳐진다. 양화나루에서 눈 덮인 백사장을 걷던 사람들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눈 내리는 한강변 망원정에서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며 머물고 싶다. 해 질녘 양화나루 망원정 함께 가보실래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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