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동포, 한국 국적 취득때 이름 잃어
지역에서 읽는 발음에 따라 이름 표기
개명신청 지원 있지만 과정 쉽지 않아
타지서 지킨 이름, 애초 바뀌지 않아야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지키면서 살아야죠….”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할린 동포 김상우(74)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개명 허가를 받아 지금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먼 러시아에서도 한국식 이름을 고수하며 살아온 김상우씨가 한국 국적을 얻은 뒤 ‘킴산우’로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인데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온 사할린 동포들이 정작 한국 국적을 얻으면 생뚱맞은 이름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 일제에 의해 먼 러시아로 강제 동원된 이들
사할린 동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령인 러시아 사할린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주된 이들을 말합니다. 1945년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6·25전쟁과 남북 분단, 미·소 냉전 등으로 199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992년부터 한국 정부는 ‘사할린 동포 영주 귀국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5천340명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고, 현재 3천여명이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달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사할린 동포와 배우자(1세대), 그 자녀와 배우자(2세대)가 한국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는 사할린 동포의 귀국 비용과 주거·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인천 연수구에는 전국 유일하게 사할린 동포들만 머무르고 있는 요양시설인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도 있답니다.
■ 러시아식 발음으로 부른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증
지난 2021년 한국에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 2세대 제재숙(75)씨도 김상우씨처럼 생뚱맞은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주민등록증에는 ‘채조수기’라는 이름이 적혀있는데요, 지금도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자신을 ‘채조수기’라고 부르면 무척 어색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할린 동포들의 이름이 바뀌는 이유는 이들이 국적을 취득할 때 행정안전부가 정한 ‘외국인명표기지침’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지침은 가족관계등록부나 외국인등록표에 한글 성명이 등록돼 있지 않은 외국인은 로마자 성명을 기준으로 이름의 ‘원지음’(원래 지역에서 읽는 발음)에 따라 이름을 표기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이름을 러시아식 발음으로 읽히는 대로 적는 것입니다. 제재숙씨의 러시아 이름 ‘Зе Дё Суги’(로마자 Ze De Sugi)를 다시 로마자 표기법으로 옮겨 적은 것이죠.
지난 1939년 가족들과 함께 사할린으로 이주했던 사할린 동포 1세대인 이녹생(91)도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주민등록증에는 ‘이나꼬사리’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는 “그토록 바라던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름은 러시아식 발음으로 정해져 본래의 이름을 잊은 지 오래됐다”고 말했습니다.
■ “본래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길”, 사할린 동포들의 요청
사할린 동포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 러시아식 발음이 아닌 한국식 이름으로 표기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구촌동포연대 등 사할린 동포 단체들은 정부에 사할린 동포들이 본래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현재 재외동포청은 사할린 동포들이 한국식 이름을 되찾기 위해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할 때 법률 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청 관계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할린 동포들이 왜 이름이 이상하게 바뀌었느냐는 민원을 많이 제기한다”며 “우선 이들이 본래의 이름을 찾기 위해 개명을 원할 때 행정사,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 정부, 더욱 세심하게 배려해야
정부는 사할린 동포들을 위해 ‘영주귀국·정착 및 생활안정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에도 이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동포 82명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날 사업을 주관한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사할린 동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재외동포청은 이름이 바뀐 동포들이 다시 이름을 찾을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동포들에게 익숙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이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오랜 기간 고국을 잊지 않고 살아온 사할린 동포들이 자신의 이름을 ‘잠시라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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