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가을밤, 강화 양사면 교산리 앞바다에서는 세계 선교 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배 위에서의 세례 의식이 펼쳐졌다. 달빛에 의지해 선상 세례를 베푼 이는 초기 한국 감리교의 대표 선교사 중 한 명인 존스(G.H. Jones, 조원시)였다. 세례의 주인공은 그 동네 출신 이승환의 모친. 기독교계에서는 이 선상 세례를 ‘강화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강화 양사면 교산리는 두 개의 면과 두 개의 리가 합쳐진 명칭이다. 선상 세례 당시 이승환 모자가 살던 마을은 서사면(西寺面) 교항리(橋項里)에 속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북사면(北寺面)과 서사면을 합치면서 양사면이라 하고, 교항리와 증산리(甑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교산리라 했다. 이승환은 시루미라 불리던 증산리 태생인데, 일찍이 인천으로 나가 주막집을 하면서 내리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존스 선교사는 1892년 인천 내리교회에 파송돼 영화학당을 시작했다. 선교 지역 확장을 희망하던 존스는 성공회가 이미 강화에 무난히 정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1893년 여름 강화 지역 선교를 위해 강화를 방문했는데, 남문 통과 과정에서 제지당했다. 신미양요(1871년)를 일으킨 미국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낙담해 내리교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존스는 교회에서 이승환을 만났다. 이승환은 주막을 처분하고 고향에 돌아가려 한다면서 노모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존스는 이승환의 안내를 받아 다시 강화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이 문제였다. 증산리로 가기 위해서는 교항리를 지나야 했는데, 그곳의 양반 김상임이 결사 반대했다. “서양인이 들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일행은 밤중까지 기다린 뒤 해안가 배에 올라 세례 의식을 가졌다.
이승환의 집에는 내리교회의 한국인 전도사가 주말마다 찾아와 예배를 주관했다. 이 과정에서 서양인을 극렬 반대하던 김상임이 한문 성경을 보게 되었고, 그 내용에 감동해 개종했다. 김상임은 내쫓았던 존스를 초청해 세례를 받고 자기 집 사랑방을 예배당으로 내놓았다. 1895년의 일이다. 강화 감리교회의 모태가 되는 교산교회의 시작이었다. 지난 주말 교산교회에 화재가 발생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130년 내공의 교산교회는 이번 시련 역시 잘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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