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수소로 바꿔 저장 ‘수소 그리드’

수소 경제는 미래를 위해 심는 사과나무

평택 선도·국가 뒷받침·대한민국 키워야

정장선 평택시장
정장선 평택시장

2024년, 미국은 약 3천억달러를 에너지 전환에 쏟아부었다. 석유 생산 1위 국가가 재생에너지 투자도 최상위권이다. 중국은 약 6천800억달러로 압도적 1위를 달리며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했다.

심지어 중동 산유국 UAE는 국영기업 Masdar를 앞세워 전 세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를 걱정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석탄이 영국을 산업혁명의 패권국으로 만들었고, 석유가 미국에 20세기를 지배할 힘을 주었다. 21세기는 재생에너지가 결정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나라가 바로 화석에너지 강국들이다.

이제 재생에너지로 만들지 않은 제품은 수출조차 어려운 시대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우리 주력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재생에너지 기반이 필수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간헐성이다. 태양광은 밤에 발전하지 못하고, 풍력은 바람이 없으면 멈춘다.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국가 전력망에 이런 불규칙성은 큰 부담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처럼 전력 공급이 단 몇 초라도 끊기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첨단산업에는 더 치명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ESS, 양수발전, 그리고 수소가 거론되고 있다. ESS는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사용하게 해 전력공급이 빠르고 설치가 간편한 반면 4~8시간이 한계고 용량 대비 비용이 비싸다. 양수발전은 남는 전기로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가 필요할 때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산과 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소 그리드는 전기를 수소로 바꿔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수소를 연료로 삼아 발전한다. ESS보다 오래 저장하고 양수발전보다 입지가 자유로워 평택이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다. 수소 그리드는 버려지는 재생에너지를 수소로 저장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흡수하고 수소배관망과 수소발전을 통해 어디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미래 인프라다.

평택은 삼성 반도체와 평택항 등 대한민국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거점이다. 그런데 이 공장들과 항만은 막대한 전력을 쓴다. 반도체 공장 하나만 해도 소도시 전체가 쓰는 전력을 훌쩍 넘기는 등 평택의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전력은 대부분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이 오르고, 그 부담은 기업과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수소 그리드는 국내 버려지는 재생에너지를 수소로 저장, 필요할 때 평택 안에서 직접 발전할 수 있다.

화석연료 없이, 송전 손실 없이, 평택에서 만든 에너지로 평택 산업을 돌리는 구조. 이것이 ‘평택형 에너지 주권’이다.

평택의 에너지 주권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 투자 불확실성이 사라진다.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면 기업은 투자하고 일자리와 세수로 돌아온다. 둘째, 글로벌 경쟁력이 올라간다. RE100이나 탄소 규제 같은 국제 기준에 맞춰 청정에너지를 공급하면 평택에 있는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셋째, 새 산업이 생긴다. 수소 생산, 저장, 운송, 스마트 그리드 운영. 그 자체가 새로운 일자리이고 산업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평택의 수소 경제는 미래를 위해 심은 사과나무다.” 사과나무는 심자마자 열매를 맺지 않는다.

심지 않으면 영원히 열매는 없다. 수소 그리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 안정, 산업 경쟁력을 한 번에 묶는 미래 인프라다. 평택이 선도하고, 국가가 뒷받침하고, 대한민국 전체가 함께 키워야 할 나무다.

에너지가 곧 경쟁력인 시대다. 평택이 심은 사과나무는 평택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전반을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다. 지금 심어야 다음 세대가 열매를 먹는다.

/정장선 평택시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